한국일보

‘대한독립 염원’워싱턴에 심어졌던 벚나무…

2019-03-31 (일)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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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 아메리칸대 교정서 1943년 임시정부 수립 24주년 행사 열려

▶ 한국여성구제협회가 다섯그루 기증… 식수후‘코리안 체리’ 명명

‘대한독립 염원’워싱턴에 심어졌던 벚나무…

아메리칸대 국제대학원 옆에서 장려하게 성장한‘한국 벚나무’(위). 1943년 4월, 이승만 박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벚나무’ 식수행사가 열리고 있다.

28일 워싱턴 DC의 아메리칸 대학교 국제대학원. 봄날의 정취를 즐기려는 청춘 대학생들의 눈길이 화사한 꽃잎을 연 벚나무들에서 떠나지 않는다. 우윳빛 꽃잎이다. 그 아래 표석에는 한국 벚나무(Korean Cherry Trees)라고 씌어 있다. 포토맥 강 옆의 ‘일본 벚꽃’이 판을 치는 미국의 수도 한복판에 ‘한국 벚나무’가 만개한 것이다. 한국 벚나무가 아메리칸 대에 심어져 해마다 봄을 알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사연은 7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임정 수립 24주년 워싱턴 경축행사
1943년 4월 8일 오전 10시 이 대학 교정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24주년 경축행사가 열렸다. 주미외교위원부, 한미협회, 한국기독교친우회가 공동 개최한 이날 행사에는 이승만 박사와 폴 더글러스(P. F. Douglass) 총장을 비롯한 미국인, 한인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가 끝난 후 이 박사는 현 국제대학원 건물 옆에 한국의 독립을 염원하면서 네 그루의 벚나무를 심었다. 한국여성구제협회(KWRS) 호놀룰루 지부(회장 이유실)가 기증한 나무였다. 그리고 기념식수한 나무의 이름을 ‘한국 벚나무’로 이름 붙였다.

# 한국산 왕벚나무
이 박사가 굳이 ‘코리안 체리’라고 명명한 것은 일본이 1912년 기증해 포토맥 강을 낀 타이들 베이신에 심어진 벚꽃이, 한국이 원산지임을 알리려는 것이었다. 당시는 태평양 전쟁이 한창일 때였다. 일본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해져 포토맥 강의 벚꽃도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벚꽃의 원산지가 한국임을 밝힌 것이다.
포토맥 강과 아메리칸 대의 벚나무는 공히 ‘왕벚나무’로 알려져 있다. 일본은 그 원산지가 자국이라 하지만 아직까지 그 자생지를 찾지 못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제주도와 울릉도에서 자생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왕 벚꽃은 꽃이 필 무렵에는 우윳빛이었다가 질 때는 연분홍으로 변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 아메리칸대 총장의 성명
식수 행사에서 폴 더글라스 총장은 특별한 성명을 발표했다. “아메리칸 대학은 한국여성구제협회가 5그루의 한국 벚나무를 선물한 것에 감사드린다. 이 나무들이 봄에 피우는 꽃들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의 상징이 될 것이다.”
부모가 한국에서 선교사 생활을 했던 더글라스 총장은 이승만 박사와 친분이 두터웠다. 그 인연으로 ‘한국 벚나무’가 워싱턴에 뿌리를 내리고 개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 한국 정원
이 박사와 참석자들이 심은 벚나무 중 1그루는 고사하고 현재는 3그루만 남아 있다. 2011년 4월에는 이 벚나무 주위에 ‘한국 정원’이 조성됐다. 메릴랜드에서 조직 배양한 제주 왕벚나무와 무궁화, 진달래 등 모두 42종 530그루가 식재됐다. 또 제주도에서 온 돌하르방 한 쌍도 세워졌다. 해마다 봄이면 76년 전 한국 독립을 소망하며 심은 한국 벚나무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우윳빛 꽃잎들을 피워내고 있다. 그리고 ‘코리안 체리’를 알리는 표석에는 “이승만 박사가 한국에서 선교사 생활을 했던 아메리칸대 폴 더글러스 총장과 함께 한국 독립을 원하는 지성인들의 의지를 담아 심었다”고 적혀 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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