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근대건축의 전시장…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

2013-07-0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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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모양 도심에 850여건물 저마다 개성 친환경 아파트‘훈데르트바서 하우스’눈길 1,200여개 옹기종기… 카페 도시 명성까지

▶ 비엔나 문화기행 ③·끝 건축의 도시

근대건축의 전시장…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

장식이 없다는 이유로 100년 전 건축당시 큰 논란을 일으켰던 로스 하우스.

근대건축의 전시장…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

같은 집이 한곳도 없다는 친환경 아파트‘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의 외관.

비엔나는 음악의 도시요 미술의 도시라고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건축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비엔나의 거의 모든 건축물은 세계적 문화유산이고, 왕정시대 건물은 물론 근대건축의 전시장인 이 도시의 풍경을 보러 빈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비엔나가 건축의 도시가 된 배경에는 ‘링 슈트라세’가 있다. 이것은 빈 도심을 링처럼 둥글게 둘러싼 환상대로를 말하는 것으로 그냥‘링’이라고도 한다. 이 대로를 따라 역사적인 건물들이 늘어서있기 때문에 처음 여행하는 사람은 링 순환버스를 타고 도시 전체를 한번 돌아보는 것이 권장되기도 한다.

비엔나는 파리와 마찬가지로 19세기에 새로 정비된 계획도시다. 빈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로서 그때까지 거대한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근대화와 함께 도시가 커지자 1857년 프란츠 요셉 황제가 성곽을 모두 허물고 새로운 대로를 건설하는 칙령을 내렸다. 황제는 대로의 넓이와 주변에 들어설 건물들의 위치며 종류까지 명시함으로써 링슈트라세가 합스부르크의 영광을 재현하는 길이 되기를 원했으며, 공사비용은 링 주변에 저택을 짓고 싶어 안달이 난 귀족과 부호들에게 땅을 판매함으로써 충당했다.

이래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새롭게 들어선 850여개의 건물들이 지금 우리가 빈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이다. 시청, 국회의사당, 국립오페라극장, 제체시온, 무지크페라인, 빈 대학, 부르크 극장, 우편저금은행 등 세기말 빈의 정신이 담긴 특별한 건축물들과 함께 주변에는 많은 공원과 광장들이 조성됐고, 모차르트, 슈베르트, 괴테, 실러 등의 예술가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를 비롯한 여러 황제와 왕비, 장군의 기념상들이 도시 곳곳에 세워졌다.


당연히 이때 전 유럽의 건축가들과 화가, 조각가, 공예가들이 앞 다퉈 공사를 수주했으며 빈은 수많은 건축양식의 각축장이 되었다. 신고전주의 헬레니즘으로부터 네오-로맨틱, 네오-르네상스, 아르 누보(유겐트슈틸), 네오-바로크, 플랑드르-고딕, 그리스 양식까지 망라하는, 각기 웅장하고 화려하고 고전적이며 세련된 스타일의 건물들이 링을 따라 다양하게 어우러지면서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혁신, 고전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도시가 되었다.

40여년에 걸친 링 슈트라세 건설사업에서 가장 많은 건축물을 지은 사람이 오토 바그너였고, 공예미술가였던 구스타프 클림트도 이때 많은 일을 수주해 활약하면서 명성을 얻게 됐다. 특히 오토 바그너는 아르 누보 스타일의 아름답고 세련된 주택, 아파트, 공공건물을 많이 지었으며 30개에 달하는 역사와 다리, 철교, 고가도로, 터널, 댐 등도 설계했다. 놀라운 것은 그 대부분이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으로,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빈의 거리 구석구석이 그의 작품들이다.

그리고 로스 하우스가 있다. 마침내 곡선과 장식이 강조된 아르누보 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장식을 철저히 배제한 직선과 사각형의 근대건축으로 넘어가는 분수령이 된 이 건물은 1911년 지어졌을 때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황제가 자주 드나드는 궁전 뒷문이 나있는 미하일 광장 복판에 아무 장식이 없는 ‘무엄한’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로스는 경찰서에 불려가고, 건설부의 압력도 받고, 황제의 미움과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도 이를 완공, 현대건축의 기초를 닦았다.

미하일 광장은 빈 시내 중심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오며가며 로스 하우스를 볼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현재 은행이 입주해있는 이 건물은 지금 보면 특별날 것이 없는 6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인데 100년전만 해도 장식이 없다는, 용서할 수 없는 ‘죄’로 눈총을 받았다는 사실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시내에서는 조금 떨어졌으나 빈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건축물이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다. 생태주의자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 1928-2000)가 낡은 건물을 개조해 1985년 문을 연 이 서민아파트는 55세대의 집이 모두 다르고 수많은 창문 하나도 같은게 없는,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건물이다.

직선을 혐오한 그는 기계로 찍어낸 듯한 현대건축을 거부하고 나무도 테넌트로 함께 살아가는 친환경 건축물을 창조했다. 건물 외벽과 창들은 구불구불한 선과 형태를 따라 알록달록한 자연색의 타일과 벽돌로 이루어졌고, 도로와 바닥 역시 울퉁불퉁 곡선 투성이인 이곳은 건물 주변에 언제나 카메라를 들이대는 관광객들이 들끓는 곳이지만 한번 들어온 세입자는 절대 나가지 않는 아파트로 유명하다.

이곳서 조금 걸어가면 쿤스트하우스가 나온다. 훈데르트바서의 작품들을 전시한 뮤지엄인데 역시 곡면의 바닥과 기둥, 계단, 장식이 모두 제각기인 전시실에 그의 회화, 건축모형, 우표 디자인 등 재미있는 작품들이 가득하다.


한편 비엔나는 또한 카페의 도시다. 세기말 빈에는 수많은 카페가 생기면서 귀족들과 지성인, 예술가들이 매일 여기 나와 카페에 비치된 50여종에 달하는 신문을 읽으며 글도 쓰고 사색하고 토론하는 공간으로 애용했다고 한다.

분리파 화가들의 아지트로 클림트와 에곤 실레가 매일 들렀던 카페 무제움, 많은 문학가들이 내 집처럼 들어앉아 작품을 집필했다는 카페 첸트랄, 알베르티나 뮤지엄과 국립오페라하우스 바로 길건너의 카페 모차르트, 커피와 케익이 유명한 카페 자허와 카페 데멜 등 모두 100년이 넘은 카페들은 직접 가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고급스러웠다. 외관과 내부 모두가 전통을 그대로 가졌으면서도 현대적으로도 어찌나 멋지고 세련된 공간으로 보존해왔는지 깜짝 놀랄 정도였다.

빈에는 무려 1,200개가 넘는 카페가 있다고 하는데 카페에서는 커피만 파는 것이 아니라 식사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곳에서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셨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카페 첸트랄이었고, 디저트가 유명한 카페 데멜에서는 커피와 케익을 맛있게 먹고도 여행자 용으로 잘 포장된 케익을 모두 하나씩 사서 LA까지 가져왔다.


<글·사진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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