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국 향한 트럼프의 실용주의

2026-05-20 (수) 12:00:00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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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기 외교정책에 대해 필자가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칼럼의 정기 독자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린란드 장악과 캐나다 병합을 위협하고, 일방적으로 관세를 천정부지로 끌어올렸으며, 이란 전쟁이라는 참사까지 벌인 트럼프의 행보는 무모하고 혼란스러우며 국제 질서를 심각하게 불안정하게 만들어 왔다. 그러나 한 가지 결정적인 영역, 즉 미·중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트럼프가 올바른 직관, 어쩌면 올바른 정책까지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상호 교류에서는 평소 좀처럼 보기 어려운 트럼프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공손했고, 거의 몸을 낮추는 듯했으며, 두 사람의 개인적 친분을 강조하려 애썼다. 반면 시진핑은 형식적이고 절제된 태도를 유지했고 특별히 따뜻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비대칭성은 의미심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권력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념이나 가치보다 영향력과 지배력을 중심으로 사고한다. 그는 유럽 동맹국들이 여전히 미국의 군사적 보호와 미국 시장 접근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들을 모욕한다. 트럼프는 약점을 감지하고 이를 활용한다.


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만큼은 그는 워싱턴의 많은 이들이 아직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실 하나를 이해하게 됐다. 즉 중국은 경제, 기술, 산업, 군사 면에서 막대한 힘을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호전적 태도에서 경쟁과 협력이 혼합된 보다 복합적인 접근으로 변화해 왔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이 관계에 필요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이를 2021년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바이든 행정부 관리들과 중국 측 인사들의 첫 회담과 비교해보라. 미국 측은 공개 생중계 자리에서 중국의 인권 문제, 사이버 공격, 국제 질서 문제를 거론하며 중국을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그러자 중국 외교관들도 똑같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는 진지한 외교적 교류라기보다는 케이블 뉴스식 고함 대결에 가까웠다.

많은 중도 성향 민주당 인사들은 “중국에 약하다”는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종종 수사적으로 과잉 대응하며 최대주의적 언어를 사용하고 상징적 충돌을 확대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의 대중 관세 정책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철폐를 약속했지만 결국 거의 모든 관세를 유지했다. 또한 바이든은 재임 중 중국을 방문하지도 않았고 시진핑을 워싱턴으로 초청하지도 않았다.

바이든 팀은 또 중국의 신장 지역 정책을 ‘집단학살’이라고 규정한 1기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에도 동의했다. ‘집단학살’이라는 표현은 홀로코스트나 1994년 르완다 대학살 같은 산업적 규모의 대량 학살을 연상시키는 용어다. 신장 지역에서 중국이 운영한 수용소와 재교육 시설은 잔혹하고 끔찍하며 수십 명의 학자들이 위구르족에 대한 중국의 행위를 집단학살이라고 규정해 왔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했듯 그것은 일반 대중이 그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다소 다르다.

트럼프의 초능력은 그가 우파로부터 공격받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는 2016년 대선 이후 베이징을 강하게 비난하며 권력을 잡았다. 그는 제조업 일자리 감소와 무역 불균형, 미국 산업 쇠퇴의 책임을 중국에 돌렸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닉슨의 중국 방문’과는 다르다. 오히려 리처드 닉슨 대통령보다 더 강경한 매파였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과 관계 개선에 나섰던 상황에 가깝다.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층이 자신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올 것이기 때문에 유사한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왜 중국에 대해 보다 협력적인 접근이 타당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중국이 소련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추산에 따르면 냉전 말기 소련 경제 규모는 이탈리아보다도 작았다. 반면 중국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이며 120개국이 넘는 나라들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고, 전기차와 배터리, 드론, 첨단 제조업,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강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의 제조업 생산량은 미국·일본·독일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이런 나라를 상대로 전면적인 신냉전을 시작하려 한다면 이미 세계가 양분돼 있었던 과거 소련과의 대결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될 것이다. 그것은 세계 경제 자체를 찢어놓는 결과를 의미한다. 미국 소비자들은 더 높은 물가와 공급망 충격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미국 기업들은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에 대한 접근권을 잃게 될 것이다. 대학들은 수많은 우수 학생들을 잃게 된다. 문제는 단순한 경제적 고통이 아니다. 점점 더 충돌로 치닫는 적대적 기술·지정학 블록 두 개가 형성되는 데 있다.


물론 미국과 중국은 경쟁 관계다. 양극 체제 세계에서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양국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경제적·군사적·전략적으로 경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쟁이 반드시 완전한 단절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 헨리 키신저는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 필자에게 양국 지도자들이 1914년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민족주의적 경쟁은 결과에 대한 고려 없이 추진됐고 결국 전 세계 질서를 뒤엎는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인공지능과 사이버전, 핵무기의 시대에는 협력 채널을 유지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두 나라는 치열하게 경쟁하되, 가능한 영역에서는 여전히 교역하고 대화하며 협력해야 한다. 핵 안정성, AI 안전, 팬데믹, 금융위기 같은 분야가 그 예다. 냉전 시절 워싱턴과 모스크바는 극심한 적대 관계 속에서도 군비통제 협상을 유지했다. 양측 모두 통제되지 않은 경쟁이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그것은 여전히 진실이다. 그리고 트럼프가 철학보다는 본능에 기반한 이유에서든 이 기본적 현실을 인식하게 됐다면, 최소한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그의 실용주의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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