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리의 심판’ 50주년

2026-05-20 (수) 12:00:00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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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두 번의 ‘파리의 심판’(Judgement of Paris)이 있었다. 하나는 전설적인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세계 와인질서를 새로 쓴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먼저 그리스 신화. 어느 날 올림포스에서 열린 결혼식에 모든 신들이 초대받았는데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 초대받지 못했다. 화가 난 에리스는 결혼식장에 나타나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쓴 황금사과를 집어던졌다. 그러자 세 여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서로 자기 것이라고 다투기 시작했다. 누구 손을 들어줄지 제우스도 매우 곤란한 상황, 그 심판을 신이 아닌 인간에게 맡기자고 하여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를 찾아간다.

여신들은 파리스에게 자신을 선택할 경우 헤라는 부와 권력, 아테나는 지혜와 승리,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파리스가 선택한 황금사과의 주인은 아프로디테였고, 그 대가로 절세미녀인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납치해 트로이로 데려간다. 이로 인해 그리스연합군과 트로이 간의 10년 전쟁이 시작되었고, 결국 트로이가 멸망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로부터 3,000여년이 흐른 후, 또 다른 ‘파리의 심판’이 벌어졌다. 1976년 5월24일, 파리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프랑스 와인 대 미국 와인의 대결이 그것이다. 하지만 당시 이 행사는 세간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때 미국의 나파 밸리는 금주령 시대를 지나며 다 죽었던 와이너리들이 조금씩 살아나던 중이었고, 와인업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캘리포니아 와인을 높이 평가한 사람이 있었으니, 영국인 와인평론가 스티븐 스퍼리어였다. 그가 유럽에서 다들 무시하던 나파 밸리 와인의 가능성을 보고 세기의 대결을 주선한 과정은 영화 ‘버틀 샥’(Bottle Shock, 2008)에 잘 묘사돼있다.

대회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진행되었고, 9명의 심사위원은 모두 프랑스 와인과 요식업계 전문가들이었다. 미디어도 초청했지만 미국 와인이 이길 리 없다고 생각한 프랑스 기자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고, 미국 타임 매거진의 조지 테이버 기자가 유일하게 참석했다. 그조차도 어떤 기대를 가졌다기보다 근처에 온 김에 와인이나 몇 잔 시음할까 해서 들른 참이었다.

시음 테이블에 오른 와인은 20개, 화이트(샤도네)와 레드(카버네 소비뇽 블렌드) 각 10종이었다. 그리고 심사 결과 최고 와인으로 선정된 레드와인은 스택스 립 와인 셀라즈(1973 Stag’s Leap Wine Cellars), 화이트와인은 샤토 몬텔레나(1973 Chateau Montelena), 모두 나파 산이었다.

이 결과는 충격을 넘어 경악이었고, 와인업계에 지진이 일어난 것과 같은 쇼크가 대회장을 휩쓸었다. 타임지의 테이버 기자는 곧바로 이 희대의 특종을 송고했는데, 이때 그가 붙인 제목이 ‘파리의 심판’이었다. 트로이의 파리스와 프랑스 파리를 절묘하게 겹친 멋진 제목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06년 5월24일, ‘파리의 심판’ 30주년 리매치가 열렸다. 1976년 대회의 결과에 승복할 수 없었던 프랑스인들이 “캘리포니아 와인은 처음에는 맛있지만 결코 오래 숙성하지 못한다”며 재대결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첫 대회와는 달리 온 세계의 초관심이 집중된 이 시음회는 영국과 나파 밸리, 두 군데서 동시에 열렸고, 양쪽에 영국 미국 프랑스의 와인전문가 심사위원들이 10명씩 포진했다.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가운데 첫 대회와 똑같은 와인을 놓고 진행된 두 번째 대결의 승자 역시 놀랍게도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미국 산이었다. 1위 리지(1971 Ridge Vineyards Monte Bello), 2위 스택스 립 와인 셀라즈, 공동 3위 하이츠(1970 Heitz Martha‘s Vineyard)와 마야카마스(1971 Mayacamas), 5위 클로 뒤발(1972 Clos du Val)…

나파 와인이 세월의 시험도 이겨내고 최고 명성을 자랑하는 보르도의 샤토 무통 로실드, 오브리옹, 레오빌 라카스, 몽트로즈를 눌러버린 것이다. 1976년 ‘파리의 심판’이 나파 밸리의 이름을 세계 와인지도에 올려놓은 역사적 사건이었다면, 30년 후의 리매치는 캘리포니아 와인도 오래 숙성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 또 다른 역사의 심판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 놀라움과 자긍심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1976년 우승한 2개의 와인은 스미소니언박물관에 ‘미국을 만든 101가지’의 하나로 선정되어 링컨의 모자, 벨의 전화기, 암스트롱의 우주복과 함께 영구소장 전시되고 있다.

파리의 심판 이후 지난 50년 동안 미국 와인산업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자신감을 갖춘 나파 밸리의 양조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최고급 컬트 와인의 등장과 함께 화려하고 복합적인 ‘나파스타일’의 와인이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1976년 500여개에 불과하던 미 전국의 와이너리 숫자는 지금 1만 1,165개를 헤아린다. 당시 나파 밸리에 70개도 안 됐던 와이너리는 지금 475개로 거의 7배 증가했다.

‘파리의 심판’이 없었어도 미국와인은 성장했을 것이지만, 그 사건이 중요한 촉매제가 되었다. 와인시장이 크게 침체된 가운데 맞이한 50주년에 다시 한번 되돌아보았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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