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요칼럼] 힘 빼기의 중요성

2026-04-21 (화) 12:00:00 박영실 시인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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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불가항력적 상황을 마주할 때가 있다. 때로 상황은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가기도 한다. 거센 조류에 휩쓸린 듯한 기분이 들 때, 우리는 당혹감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답은 의외로 ‘내려놓음’에 있다.

삶에서 힘 빼기는 생존과 성장을 위한 중요한 요소다. 필자는 오래전 수영을 처음 배웠을 때를 오롯이 기억한다. 수영 강사가 첫 시간에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몸에 힘을 뺀 상태로 물에 몸을 맡기라는 것이었다. 강사의 지시를 따른 이들은 물 위에서 움직임이 자연스러웠고, 자유롭게 호흡하며 목표 지점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여전히 몸에 힘을 주어 허우적거리다 가라앉는 이들이 있었다. 공포는 근육을 경직시켰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칠수록 몸은 돌덩이처럼 무거워졌다. 기초부터 힘 빼는 법을 터득한 이들은 물을 두려워하기보다 진심으로 즐기는 법을 먼저 배웠다.

필자 역시 처음에는 서툴러 일주일이 지나서야 물 위에 뜰 수 있었다. 물과의 싸움을 멈추고 온몸의 긴장을 푼 순간, 물과 하나가 되어 자유를 만끽하던 그 감각을 여전히 기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물에 뜨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언가를 하려는 강박적인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힘을 줄수록 가라앉고, 힘을 뺄수록 떠오르는 물리적 이치는 우리 삶의 원리와도 깊게 닮은 듯했다.


바닷가에서 서퍼들을 관찰하다 보면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서퍼들은 파도가 크게 일수록 그 높이를 타고 즐기기 위해 바람이 많은 날 바닷가를 찾는다. 그 안에서도 힘을 빼는 부류와 힘을 주는 부류는 묘하게 나뉜다. 파도에 몸을 맡긴 서퍼는 거대한 파도가 몰려와도 너끈히 넘으며 다음 파도를 여유 있게 기다렸다. 반면 몸에 힘을 빼지 못한 이들은 파도의 힘을 온몸으로 버텨내려다 균형을 잃었다. 결국 파도에 매몰되어 방향을 상실한 채 비틀거리며 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망망대해에서 힘 빼기는 생존하느냐 침몰하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다. 삶의 바다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파도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마주하는 파도도 있다. 거대한 힘에 압도되어 표류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흐름에 맞서다 기력을 다하기도 한다. 이때 내 의지로 무엇을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파도에 몸을 실어 보면 어떨까. 방향과 중심만 잃지 않으면 된다. 힘을 뺀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목적지에 안전하게 닿기 위해 불필요한 저항을 멈추는 지혜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상황 그 자체보다, 그 상황을 내 뜻대로 통제하려는 과도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때로는 지나친 집착이나 목표지향적인 강박에서 벗어나 여유 있게 한 걸음 물러설 때, 보이지 않던 해결책이 선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급변하는 삶의 망망대해에서 어떠한 파도가 엄습해도 유연하게 서핑하는 서퍼가 되길 소망해 본다.

<박영실 시인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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