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동 사막서 ‘한강의 기적’, 뉴욕서 리더십 꽃 피우다

2026-03-26 (목) 08:04:48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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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한국어재단 · 한미충효회 이사장 김영덕 박사

▶ 정주영이 인정한 건설업계 인재…“중동 진출은 조국위한 일”

중동 사막서 ‘한강의 기적’, 뉴욕서 리더십 꽃 피우다

중동 사막에서 이룬 신화를 털어놓고 있는 김영덕 박사.

▶은퇴후 뉴욕서 한국어교사 양성 · 효사상 고취에 힘써
▶부인 김재진박사 커네티컷서 32년간 ‘의료봉사 · 헌신의 삶’

1934년 강원도 고성군 장전에서 태어난 김영덕 박사(92)의 인생 스토리는 아무리 들어도 지루하지 않다. 너무 드라마틱하고 스릴 넘치고 장대해서 마치 한 편의 감동적인 대하소설이나 영화 같다. 기자는 이 멋진 스토리를 듣기 위해 겨우 그를 접촉해서 장시간 들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중동 사막서 ‘한강의 기적’, 뉴욕서 리더십 꽃 피우다

아들 로렌스 박사와 딸 엘리나 박사와 함께 한 김영덕^김재진 박사 부부.


■중동 건설 신화의 주인공
김영덕 박사는 한국 건설업계가 불모지에 가까웠던 시절, 조국의 산업화와 중동 건설 신화를 이끈 주역으로 기록된 인물이다.
거제고(1953)와 서울대 공대 토목공학과를 졸업(1958)하고 해군 장교로 복무한 뒤, 그는 1963년 캐나다 웨스턴대학교에서 지질학·토목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부인 김재진 박사 또한 부군인 김영덕 박사와 함께 아화여대 의과대학을 졸업(1958)하고 캐나다에 유학 와 의학박사 학위(1970)를 받고 의료인으로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부인 김재진 박사의 병원 개원이 뉴욕으로 정해지면서 김영덕 박사는 홀로 캐나다에서 두 자녀를 돌보며 1968년부터 Golder Associates 오타와 지점장으로 4년간 근무하게 된다.


그리고 1년후 부인이 있는 뉴욕에 와서 Nueser & Rutledge, NY City의 주니어 파트너(1974)로 일하던 중, 이듬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석유회사로부터 기술고문으로 초청받아 현지로 부임했다.
중동 사막서 ‘한강의 기적’, 뉴욕서 리더십 꽃 피우다

중동건설에 김영덕 박사를 영입하기 위해 사흘간 설득한 고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


■정주영의 삼고초려, 김영덕 박사의 현대건설 합류
1976년도, 현대건설이 세계에서 제일 큰 주베일 항만공사(9억3000만달러 규모/대한민국 연예산의 30% 해당)를 땄는데, 실제로 현대건설이 그렇게 큰 항만 공사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때 해양구조물 경험이 있는 김영덕 박사가 그 사실을 알고, “내가 있는 회사를 대표해 상담을 통해 무사히 끝나게 해주겠다.” 했더니 정주영 회장이 김 박사를 직접 만날 것을 희망해 김 박사가 뉴욕에 가는 길에 한국에 잠시 들르게 되었다.

정 회장은 당시 장관급 고위인사들을 여러 명 모아놓고 자리한 김 박사가 새 직장의 책임과 가족 문제 등의 이유로 즉답을 못하자 “조국을 위해 함께해 달라”고 사흘간을 간곡히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정주영의 삼고초려). 결국 그는 귀국을 결심하고 현대건설에 합류, 가족과 생이별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정주영이 머리숙인 젊은 박사, 한국 건설 신화를 움직이다
당시 한국에는 기초지반·해양구조물 분야의 전문 인력이 거의 없었고, 김 박사는 사실상 그 분야의 유일한 최고 권위자였다.

그의 지반 조사와 공법 설계는 10년이 걸릴 공사를 36개월 만에 완수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다. 정주영 회장이 그를 “하늘이 내려준 사람”이라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박사는 “그 공사는 결국 나를 위한 것도, 현대를 위한 것도 아닌 조국과 민족을 위한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이후 현대건설 부사장(1976-1981)에 이어 현대해양개발 사장(1981), 현대중공업 해양개발사업본부 부사장(1982-1987)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오대양 및 심해 유전개발을 개척하며 전세계를 리드했다. 이어 뉴욕에 돌아와 10년간 현대종합상사 미주법인 사장(1987~1997)을 역임하며 한국 건설업계와 해외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로 활약했다.

■학문·봉사·헌신으로 이어진 한 가족의 품격
중동 현장에서 집을 까맣게 잊고 11년을 정신없이 보낸 어느 날, 아내로부터 “지금 들어오지 않으면 영원히 볼 생각 말라”는 절박한 경고가 전해졌다. 그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음을 감지하고 곧바로 사표를 내고 귀국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아내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김재진 박사는 커네티컷 밀포드에서 병원을 개원하고, 32년 동안 휴가 한 번 없이 환자들을 돌보며 ‘마더 테레사 같은 의사’로 불리면서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2023년 그가 작고하자 지역 주민들은 너나없이 그의 희생적 삶을 기리며 추모했다. 그는 모교인 이화여대 의과대학에 100만 달러 장학금을 유언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김영덕 박사 부부의 삶은 모두 학문과 봉사의 가치를 온전히 보여준다. 아들 로렌스(고전학/ 텍사스 Trinity대학), 딸 엘리나(인류학/CA Irvine대학), 사위까지 모두 박사학위를 취득해 현재 대학에서 정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 가족 모두가 학문과 교육의 길을 걷는 보기 드문 ‘학자 가문’이다.

■뉴욕에서 다시 피어난 리더십, 공동체의 품격을 세우다
은퇴 후 김 박사의 무대는 오히려 더 넓어졌다. 그는 뉴욕 한인사회에서 한국어·효(孝)·공동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조용하지만 강력한 리더십을 펼쳐왔다.

미주한국어재단 이사장으로 18년간 한국어 교사 양성에 힘써, 현재 미 공립학교 35개교에 60명의 한국어 교사가 정식 채용되었고 학생 수는 4,000명에 이른다. 이 모든 과정은 한인사회 후원금으로 이루어진 장기 프로젝트다.

또 충효회 이사장으로서 노인복지와 효 문화 확산에 힘을 보태왔으며, 원로자문위원회 위원으로도 노년층의 여가 및 다양한 활동 증진을 위해 자문역할도 하고 있다.

문화 분야에서도 뉴욕대한민국음악재단 이사장으로 대한민국음악제를 2회 성공적으로 개최(2023, 2024)해 뉴욕의 한인들에게 애극심을 고취시켰으며, 2025년에는 서울과 거제도에서도 음악제를 열어 한국 사회에도 큰 울림을 남겼다.

■밝고 긍정적인 성격, 그리고 도전정신
그의 리더십은 조용하지만 단단하고, 겸손하지만 흔들림이 없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공동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서울대 뉴욕동창회 수석고문으로 동문 네트워크 강화에도 기여해 왔으며, 커네티컷-뉴욕을 왕복 4시간씩 오가며 한인사회 활동을 이어가는 ‘노익장’의 상징이기도 하다. 골프를 통해 평생 자기관리를 실천해온 그는 밝고 긍정적인 성격, 도전정신, 그리고 공동체를 향한 책임감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중동 사막서 ‘한강의 기적’, 뉴욕서 리더십 꽃 피우다

[사진]



한 사람의 선택이 한 시대를 바꾸다
■ 김영덕 박사의 다양한 봉사 이력
김 박사가 미국에서 한 활동들은 한미관계 강화를 위해 한국상공회의소 창립 및 초대회장(1993)과 코리아 소사이어티 이사(1987-2019) 등을 비롯, 미주 아시아 소수민족 단합과 비영리기관을 돕기 위해 Asian American Federation 이사장으로도 활동했다.

또 KALCA(한미시민 활동연대 창립 이사로 활동했는데, 이 단체는 워싱턴 소재 CKA(Coalition of Korean American)와 2018년에 합병했다.
이 외에도 28대 뉴욕한인회 이사장(2004년-2년), 미주한국어재단 회장(2007년-2015년), 이사장(2015- 현재), Research Foundation for Korean American Community 창설 맴버(2015)이자 현 이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다양한 봉사와 리더십으로 대한민국 국민훈장 목련장(2009), 미 연방하원의원 찰스 랭글의 의회 표창(2012), 서울대 이장무 총장 사회기여상(2008) 등을 수상했다.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한 개인의 영향력이 공동체 전체의 문화, 사회적 깊이를 바꿀 수 있을까. 김영덕 박사의 삶은 그 질문에 조용하지만 확실한 답을 준다.

그는 기업인의 논리와 공동체 리더의 책임감을 한 몸에 담아내며, 한국 디아스포라가 어떤 방식으로 조국과 지역사회를 동시에 빛낼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언이다. 중동 사막에서 신화를 이룬 그의 발자취는 이제 뉴욕 땅에서 다음 세대를 일으키는 희망의 토대가 되고 있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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