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한인사회 거목’ 김기철 회장
▶ JC회장·뉴욕한인회장·세계한인회장대회 의장·평통 미주부의장까지

[김기철 · 사진]
▶굵직한 단체장 두루 거치며 공동체를 지탱한 기둥
▶성실한 가장·성공한 사업가·쉼없는 봉사 뒤엔 신앙생활이 큰 힘
뉴욕 한인사회가 지금의 규모와 깊이를 갖추기까지, 그 뒤편에는 묵묵히 한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이 있다. 화려한 조명보다 책임을 먼저 택하고, 박수보다 공동체의 내일을 더 크게 바라보며, 한 번 맡은 일은 끝까지 완수하는 사람들. 김기철 회장은 그 긴 시간의 중심에 서 있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기철’ 하면 많은 이들이 우선 떠올리는 것은 “굵직한 단체장은 다 맡아 참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봉사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40년 넘은 세월 동안 그는 뉴욕 한인사회 곳곳에서 쉴 틈 없이 분주히 움직였다.
브루클린한인회를 창립하고 JC(청년회의소) 회장을 거쳐, 뉴욕한인회장, 세계한인회장대회 의장, 평통 회장, 평통 미주부의장 등 굵직한 직책을 맡으면서 단체장으로서의 책임을 가장 오래, 가장 성실하게 수행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는 이번 인터뷰 요청에 한사코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기자의 끈질긴 설득에 가까스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2026년 올해 1월 가진 은퇴기념 파티에서 두 딸 가족과 함께 한 김기철 회장.
■브루클린에서 시작된 첫 봉사 - 1983년 브루클린한인회 창립
김기철 회장의 봉사 여정은 뉴욕 한인사회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전, 1983년 브루클린에서 시작되었다. 생업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던 시절, 그는 주변 한인 상인들과 함께 브루클린한인회를 창립하며 공동체 조직의 첫 단추를 끼웠다. 이 작은 시작이 훗날 그의 40여년 봉사의 거대한 뿌리가 되었다.
■JC에서 다져진 ‘공동체 DNA’
1980년대 중반, 그는 JC활동을 통해 젊은 리더들의 네트워크 속에서 공동체 봉사의 의미를 새롭게 확인했다. 그는 그곳에서 ‘함께 사는 삶’의 가치를 배웠고,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것이 곧 자신을 세우는 길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젊었으니까 힘이 있었고, 뭔가 해보자는 열정이 넘쳤지요. 시간이 지나 보니, 그때의 작은 경험들이 제 인생의 방향을 이끌었어요.” 김기철 회장의 말이다. 그에게 JC에서의 경험은 그의 봉사생활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출발점이자, 큰 힘이 된 것이다.
■뉴욕한인회장(28대), 그리고 세계한인회장대회 의장까지
김기철 회장이 한인사회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3~2005년도 뉴욕한인회장을 맡으면서부터다.
그는 특유의 온화함과 강단있는 추진력으로 조직을 안정시키고, 다양한 단체와의 협력을 강화하며 뉴욕한인회의 위상을 높였다.
이후 그는 세계한인회장대회 의장을 맡아 전 세계 한인 리더들과 교류하며 글로벌 한인 네트워크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는 그가 단지 지역 리더가 아니라, 세계 한인사회가 인정한 지도자였음을 보여준다.
■평통 회장, 평통미주부의장… ‘책임’이라는 이름의 무게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또 다른 무대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였다. 뉴욕 평통 회장으로서 그는 한반도 정세를 지역사회에 전달하고,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며 공동체의 목소리를 모국에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의 리더십은 자연스럽게 미주부의장으로 이어졌다. 미주 전역의 한인사회와 소통하며 더 큰 무대에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자리였지만,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균형감으로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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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소단체까지 두루 살핀 ‘조력자의 리더십’
김기철 회장의 봉사는 큰 단체에서만 빛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뉴욕 한인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여러 군소단체들까지도 꾸준히 도우며 조력자의 역할을 잊지 않았다.
행사가 있으면 찾아가 힘을 보태고, 앞뒤에서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그는 “큰 단체만 공동체가 아니다. 작은 단체들이 있어야 큰 단체도 존재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런 태도는 그가 단순한 ‘리더’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품는 ‘버팀목’이었음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동력, 교회 장로의 삶
그의 꾸준함과 성실함의 바탕에는 오랜 신앙생활과 교회 장로로서의 삶이 있었다. 그는 신앙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그의 행동과 태도에는 늘 ‘섬김’과 ‘겸손’이 배어 있었다.
교회에서의 봉사는 그에게 또 다른 훈련장이었다. 사람을 이해하고, 갈등을 품고,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운 곳. 그는 “신앙이 없었다면 지금의 봉사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정을 지킨 가장으로서의 책임
공동체 활동이 아무리 많아도 그는 가정의 책임을 잊지 않았다. 사업과 봉사, 단체 활동이 겹쳐 바쁜 날들이 많았지만, 그는 아내와 두 딸 가족과의 시간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가 공동체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삶이 가정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롱아일랜드의 사업가, 그리고 은퇴 후의 새로운 삶
공동체 활동과 별개로, 그는 롱아일랜드에서 뷰티서플라이 업을 운영하며 성실한 사업가로도 자리 잡았다. 이민 1세대에게 사업은 생계이자 가족의 미래였고, 그는 그 책임을 성실히 감당했다.
그러나 올해부터 그는 30년간 이어온 사업에서 손을 떼고 본격적인 은퇴 생활을 시작했다. 40년 넘게 평생을 봉사로 살아온 사람이 이제야 비로소 ‘자신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된 것이다.
■뉴욕 한인사회에 기록된 ‘거목 중의 거목’
김기철 회장의 40여년은 단순한 봉사 경력이 아니다. 그는 뉴욕 한인사회 현존하는 인물 중 거의 신화를 썼다고 평가될 만큼, 굵직한 단체장은 모두 맡아온 유일한 인물이다.
볼드윈에 위치한 그의 개인사무실에 가면 그의 발자취가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하고도 남는다.
숱한 행적이 담긴 많은 사진첩, 수없이 받은 공로상, 봉사상, 감사장, 패들이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온 방안에 빼곡하고 즐비하다.
그는 늘 ‘말 보다는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잠시 스쳐 지나간 리더’가 아니라 ‘세월을 견디며 공동체를 지켜온 진정한 리더’였다.

여행으로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는 김기철회장 부부.
“은퇴는 또 다른 시작⋯골프·여행으로 삶을 더 풍요롭게”
■ 은퇴후의 삶
은퇴 후 그의 삶을 가장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골프와 여행이다. 그는 자연 속에서 걷고, 친구들과 함께 라운딩하며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있다. 또한 여행을 통해 새로운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며, 그동안 미뤄두었던 ‘자기만의 시간’을 채워가고 있다.
그에게 골프와 여행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었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김기철 회장은 이제 공동체의 중심에서 한 발 물러나, 더 넓은 시야로 뉴욕 한인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의 경험은 후배들에게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고, 그의 삶은 이민 1세대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 될 것이다. 앞으로 그의 이름은 이 공동체의 역사 속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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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