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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군번 대신 써라”…백범이 건넨 ‘광복군 반지’ 첫 공개

2026-02-28 (토) 03: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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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수리 작전’ 앞두고 백범이 사비로 맞춰…’결사항전’ 증표

▶ 故 송창석 지사 아들 민족문제연구소에 위탁…진위 검증 필요성도

“죽으면 군번 대신 써라”…백범이 건넨 ‘광복군 반지’ 첫 공개

독립 직전 김구가 준 ‘광복군 반지’ 처음 나와…진위 주목 [연합뉴스]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직전, 국내 진입 작전을 앞둔 한국광복군 대원들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사비를 털어 나눠줬다는 반지가 3·1절을 맞아 처음으로 공개됐다.

광복군 대원이었던 고(故) 송창석 독립지사의 아들 송진원(60)씨는 지난달 27일(이하 한국시간)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아버지의 유품인 '광복군 반지'를 연구소에 대여 형식으로 맡긴다고 밝혔다.

1940년대 중국군 소속으로 일제와 싸우던 송 지사는 1945년 광복군에 합류해 암호명 '독수리 작전'으로 불리는 한미합작특수훈련(OSS 훈련)을 받았다. 일제의 패색이 짙어지던 당시 임시정부가 미국 첩보부대와 공동 추진한 비밀 연합 작전이었다.


공개된 반지는 무궁화와 별 문양이 특징이다. 번개 표식은 송 지사가 속했던 무전반을 뜻한다. 흔히 알려진 광복군 제1∼4지대 문양과는 다르지만, 1945년 임시정부가 낸 휘장 도안의 장교 표식과 유사하다. 안쪽엔 제품 번호와 '한광무전반'(한국광복군무전훈련반)이라는 한문 표식이 남아 있다.

송 지사가 별세(1990년·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전 자필로 남긴 문서에는 이 반지에 얽힌 비장한 사연이 담겼다.

1945년 8월께 충칭에서 산시성 시안으로 넘어온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이 무전반의 훈련을 시찰하던 중 '조국 땅으로 죽으러 가는 이들이니 기념품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선임이었던 이재현 지사가 반지를 제안하자, 김구 선생과 지청천 총사령관 등 수뇌부가 사비를 털어 44명분의 '훈련 수료 반지'를 마련했다고 기록돼 있다.

송씨는 "아버지께선 '이 반지가 군번이 될 수 있다. 조국 땅에서 죽으면 신원 확인용으로도 쓸 것'이라고 김구 선생께서 말씀하셨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사연은 백범일지 등 공식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기록상 김구 선생과 지청천 총사령관은 1945년 8월 초 시안에 도착해 훈련생들을 격려했고, 그즈음 수료한 인원도 38명으로 송 지사가 거론한 44명과 큰 차이가 없다. 제안자로 언급된 이재현 지사 역시 당시 무전반으로 활동했다.

광복군 연구 권위자인 한시준 단국대학교 명예교수는 "처음 듣는다"면서도 반지의 세부 사진을 확인한 뒤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정황만 보면 가능한 이야기 같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재현 지사의 아들인 이형진 한국광복군기념사업회장도 반지에 대해 들은 바가 없어, 독립기념관이나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의 고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족인 송씨는 이 반지를 국가 기관인 독립기념관에는 기증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과거 독립운동 폄하 논란이 불거진 김형석 전 관장을 규탄하는 등 독립기념관 측과 각을 세워왔기 때문이다. 송씨는 과거 기증한 유품의 반환도 요구하고 있다.

송씨는 "그때 아버지처럼 할 수 있었을까 되묻곤 한다"며 "초등학생 때 목욕탕에서 아버지 등을 비누칠하다가 왜 이렇게 흉터가 많냐고 묻자 독립운동 과정의 전투·훈련 흔적이라 하셨다"고 회고했다.

애타게 국내 진입 작전을 준비했던 송 지사는 8월 10일 일제가 항복 의사를 밝히면서 끝내 작전이 무산되자 큰 좌절을 겪었다고 한다. 송씨는 "외국에서 싸우다가 목숨을 바칠 각오로 힘든 훈련까지 마쳤는데 작전이 무산돼 통곡하셨다고 했다"며 "이런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는 뜻에서 반지를 맡기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유품을 건네받은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봉창 의사 선서문, 윤봉길 의사 회중시계처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 한 청년 정신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며 "독립군 후예로서 국군이 정통성을 확립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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