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요칼럼] 가지치기

2026-02-10 (화) 12:00:00 정유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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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건강, 수형 관리, 생산성 향상, 또는 안전을 위해 불필요하거나 병든 가지, 웃자란 가지를 잘라내어 솎아주는 작업이다’ Google은 가지치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작년엔 나무가 지치도록 많은 열매가 열린 감 풍년이었다. 타 주에 사는 딸을 위해 연말까지 얼마의 감을 남겨 두었더니 감 잎새는 열매와 동행하려는 듯 세찬 비바람에도 떨어지지 않았다. 감을 모두 따자 비로소 떨어져 나목이 되었다. 드디어 가지치기할 때가 된 모양이다. 어떤 가지를 자르고 남겨 둬야 하는지 도움을 받기 위해 유튜브를 찾았다.

30년이 넘은 뒤뜰의 감나무는 가지가 울창하고 잎이 무성하여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전선까지 닿아 있는 가운데 큰 가지와 허락도 없이 뒷집 담을 넘은 가지는 반드시 쳐 내고 톱질을 해야 할 성싶었다. 처음 두 그루의 감나무를 심었을 땐 묘목의 간격이 널찍했으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무는 자라 서로를 끌어안는 형국이 돼버렸다. 잎이 떨어져 나목이 된 지금은 볕도 잘 들어오고 바람도 잘 통하는 듯 보이지만, 나무에 물이 오르고 잎이 돋아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본 가지에서 돋아난 새잎이 가지로 자라 열매를 맺는 감나무의 특성상, 잎눈 꽃눈을 틔우며 세력을 넓힌 새 가지는 본래의 가지들과 바람도 햇빛도 나눠야 한다. 가지치기가 필요한 이유다. 새 가지에서만 열매가 맺힌다니 조물주의 디자인이 신비롭다.


유튜버는 먼저 가운데 굵은 가지를 잘라 햇빛과 바람을 잘 통하게 해주라고 한다. 가지치기할 때마다 욕심쟁이가 되어 아까워서 제대로 가지를 쳐내지 못했다는 그의 말에 격하게 동감한다. 그의 말대로 큰 가지 몇 개를 자른 후, 또 어떤 가지를 자를까 고민한다. 쳐내야 할 가지를 정확히 모르는 탓이다. 다시 유튜브를 열어 가지치기하는 걸 관찰한다. 그는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거침없이 가지를 잘라낸다. 무엇을 잘라야 할지 망설이는 내게 그의 행동은 경이롭다. 그동안 쳐내지 못한 가지는 서로를 할퀴고 찌르며 부대끼느라 가치가 떨어지는 상처투성이 감을 생산했다. 올해는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하리라 남편까지 동원했지만, 역시 가지치기는 만만하지 않다.

가지 사이로 종종 삭정이가 눈에 띈다. 삭정이는 산 나무에 붙은 채 말라 죽은 가지다. 그야말로 많은 가지 틈에서 생존경쟁에 낙오된 가지다. 나무에서 영양분을 받지 못해 힘없이 툭 부러지는 삭정이. 미처 가지치기를 해주지 못한 주인의 잘못이 크다.

생각하면 나무만 가지치기가 필요한 게 아니다. 삶과 소유, 생활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요즘 여러 분야에서 언급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가지치기에 빗대어 본다. 집안에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한둘이 아니다. 과감히 버리지 못하는 건 물건만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내면에도 있다. 감나무 가지치기보다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의 실천이 시급하다는 걸 깨닫는다. 버려야 할 것들을 고르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생각을 단순히 하고 마음의 욕심과 소유에 대한 욕망을 비워내야겠다. 생활의 찌꺼기와 소유도 쳐내지 못하면서 가지치기를 위해 유튜브를 검색하는 자신이 우스워 전지가위만 만지작거린다. 그리곤 나직이 속삭인다.

가지치기는 나무에 물이 오르기 전에. 미니멀 라이프, 일단 시작하자.

<정유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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