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욕심이 빚은 빈 둥지

2026-02-09 (월) 07:57:13 김 레지나 워싱턴 문인회
크게 작게
초봄이 되면 겨우내 나무에 매달려 있던 크고 작은 새집들을 끌어 내려 청소하는 작업을 한다. 올해는 어떤 새가 주인이 될지 모르지만 깨끗한 집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새집들은 우리가 가끔 만들어진 새집을 사다가 나무에 놓아둔 것이다.

본능적으로 새들은 종류별로 재료나 크기가 다른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스스로 짓는다. 어떤 무리는 3~4일간 고생하며 나뭇가지, 짚단, 흙 등을 열심히 물어날려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그러나 이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견고한 집을 선호하는 새들도 있다. 굴뚝새 wren를 위해 나무에 매달아 둔 작은 집에 그보다 몸집이 큰 참새가 머리를 들이민다. 하지만 출입문보다 커서 들어가진 못하고 여러 번 몸통을 비틀다가 번지수가 틀린 것을 아는 지 포기하고 날아간다. 이제 삼사월이 되면 여기저기 매어 놓은 새집에서 어린 식구들이 재잘거리고 끼니마다 풍성한 밥상이 차려질 것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배나무에 달린 항아리 같은, 낡고 초라한 작은 새집에 눈길이 멎는다. 작년 3월쯤, 배나무잎이 무성하여 잘 보이지 않는 가지 사이에 울새robin가 흙과 풀, 나뭇가지 등을 입에 물고 바삐 들락거렸다. 엄마 새의 새 식구맞이 준비가 일주일쯤 지나니 그곳에 소라 모양의 단단한 둥지가 지어졌다. 손으로 이리저리 밀쳐보았지만 탄탄해서 허물어지지 않는다. 이주일쯤 후에는 푸르스름한 세 개의 알을 어미 새가 품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푸른색 너머에 숨겨져 있을 새 생명의 신비로움에 가슴이 뛴다.


신기한 사실을 목격하니 모든 게 의문투성이인 네 살짜리 손자가 떠올랐다. 예쁜 알과 새집을 보며 기뻐할 손자에게 영상을 보내고 싶었다. 보낼 영상을 찍기 위해 어미 새가 잠깐 먹이를 찾아 나갈 때마다 전화기를 새 둥지에 들이댔다. 게다가 어느 하루는 둥지 앞에서 손자에게 새집을 보여주며 영상통화까지 하면서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 후 놀라운 일이 생겼다. 알을 품기 위해 들락날락하던 어미 새가 며칠을 안 나타나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아마 어미 새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유인즉 그들의 생활을 침범한 나의 무지로 인해 어미 새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럼, 알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제야 인터넷을 찾아보니 사람이 여러 차례 방해하면 어미가 둥지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다고 나와 있었다. 그래도 품고 있던 알은 부화시킨 후에 떠나야 하지 않나? 하는 야속함이 앞선다. 하지만 알의 부화마저 팽개치고 위협을 떠나 안전을 찾아간 어미 새가 택한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기는 시간이 필요했다. 자연에서는 번식보다는 생존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덩그러니 남겨진 세 개의 새알이 없어지기까지는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여러 종류의 새나 다람쥐의 만찬이 되었으리라. 텅 빈 새집을 힐끔거릴 때마다 죄책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탄생의 기다림에 대한 인내를 감지하지 못하고 욕심을 앞세운 나의 어리석음이 부끄럽기 그지 없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연의 질서를 떠나 인간의 마음으로 어미 새의 마음을 읽고 싶다. 어미 새는 얼마나 돌아오고 싶었을까? 자식들이 자라서 스스로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선 후의 빈집도 이리 쓸쓸한데, 태어나지도 못한 자식을 버린 채 떠난 어미 새는 어디서 목에 피를 흘리고 있을까?
손자에 대한 사랑 욕심이 빚어낸 결과로 자연의 질서를 배우는 좋은 계기가 되었지만, 푸르스름한 세 개의 새 알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김 레지나 워싱턴 문인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