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도 없이 의원 배지 단 490명. 유권자는 안중에 없는 그들만의 선거’ 본보 사설에 실린 제목이다.
요즘 언론을 통해 야합(野合)이 판을 치는 공천 헌금 수수 의혹은 정치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국회 의원과 지방의원 간 유착관계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사회속에 야합은 이념이나 명분보다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부적절하게 결합하는 행위로 주로 정치적 줄서기 판짜기 혹은 사회 제도적 결함과 모순 속에 만연한 부조리 연대를 의미한다. 혐오와 배제가 팽배한 사회구조 내에서 정치적 실천 부재나 불투명한 운영 등과 맞물려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신뢰를 하락시키는 주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간의 금전 거래와 공천 과정에서 영향력 행사는 공정성을 해치고 부패를 심화시켜 신뢰를 야기시키고 있다. 특히 사법권과 개신교 야합은 종교 기득권이 사회 전반에 작동함을 견제해야 할 중대사다. 불교도 옛 왕조시대 왕권에 밀착하는 형태로 활동하다가 혹독한 피해를 겪은 적도 있었다. 반드시 이런 교훈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요즘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국회의원에게 수천만원을 상납하다시피 하고 집사 역할까지 도맡아하는 지방의원들. 이들이 누릴 수 있는 권한과 이권이 크기 때문이다.
그 지역에선 어딜가나 VIP 대접을 받고 활동비도 수천만원이며 경업(競業)도 가능해 대부분 당선전 하던 사업을 계속한다. 이런 특혜들이 있으니 야합이 판을 칠 수 밖에 없다. 국회의원들의 지방의원 공천권을 배제하지 않는 한 이러한 부조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물고기의 IQ는 0.3이라고 한다. 다른 물고기가 낚시에 걸려 밖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도 또 입질을 한다. 그러면 정치인의 IQ는 얼마나 될까. 일부 소수 정치인 역시 0.3이라고 한다. 동료 정치인이 뇌물을 먹고 끌려가는 것을 보고도 또 뇌물을 먹는다.
야합(野合)이란 한자는 들야(野)와 합할 합(合)이며 들판과 합한다는 얘기다. 부부가 아닌 남녀가 몸을 섞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정치에서 부정한 목적을 위해 몰래 손잡는 행위를 일컫는말로 더 자주 사용된다.
야합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사마천의 ‘사기’ 에서는 오늘날의 부정적 의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인간의 본능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과 명맥을 잇는 절실함과 한 시대를 바꿀 운명적 사건으로 기록된다. 춘추시대 노나라에 공흘(孔紇)이라는 무인(武人)이 있었다.
장대한 체구에 뛰어난 무력을 지니고 대부가 되었으나 나이 예순이 넘도록 하나뿐인 아들은 허약해 ‘공흘’은 마을의 무녀에게 부탁했고 그 집의 막내딸 안징재(顔徵在)는 나이 열여섯에 노인의 부탁을 받아들인다. 63세 노인과 16살 처녀는 들판에서 몸을 섞는 야합을 했고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가 바로 세계 4 대 성인인 공자(孔子)다. 사상의 거인이 이처럼 야합이라는 들판의 생명력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공자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고 무녀 출신 어머니 품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지만 그 배경은 오히려 그의 사상 속에 인간 존엄과 약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위대한 교육자이자 철학자로 평가받으며 사회 정의를 키워낸 토양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야합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음모와 모략(謨略) 권력의 탐욕을 떠올린다. 민의를 외면한 채 양지만 쫓고 사리사욕을 위해 손을 잡는 정치인들에게 더없이 잘 어올리는 말이 되었다.
생명을 위한 야합은 역사로 남고 권력을 위한 야합은 부끄러움으로 남는다. 이재명 정부는 권력의 야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연합이 되더록 야합이 없는 진리가 날카롭게 꽃치는 그런 정부가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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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영/뉴욕평통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