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문입설(程門立雪)
▶ 겸재(謙齋) 정선(鄭敾) (정이 선생님 집 문 앞에 서서 눈을 맞다) 국립중앙박물관
배움을 구하려고 두 제자 찾아가니
스승은 눈을 감고 깊은 명상 하시기에
제자들 앞뜰에서 묵묵히 기다리네
함박눈 펄펄 내려 허리까지 쌓였으니
그대들의 배움 열망 눈처럼 쌓였도다
정이 선생 감격하여 두 팔 벌려 반기시네
‘스승을 존경하고 배움을 간절히 바라는 제자의 마음과 자세’를 가르치는 고사(故事)를 겸재가 그린 그림이다. 스승이라는 말은 조선시대의 어린이용 교과서인 <훈몽자회(訓蒙字會)>에 나오는 사승(師僧)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에 그치지 않고, 삶의 방향과 태도까지 일깨워 주는 존재로 여겨졌다.
중국 당나라의 문학가이자 사상가로 당송8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 768-824)는 <사설(師說)>에서 ‘스승이란 글을 가르치고 지식을 전할 뿐 아니라 의혹을 풀어주고 도(道, 유학의 도)를 전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옛 중국과 조선에는 스승을 존경하고 어려워하는 문화적, 사회적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스승을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로만 여기는 경향과 함께, ‘스승’이라는 말이 지니는 의미가 점차 퇴색되는 듯하다.
중국 송(宋)나라 때 양시(楊時)와 유초(遊酢) 두 사람은 학문에 뜻을 두고 항상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였다. 양시는 진사(進士)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이학(理學)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당시 하남(河南) 영창(潁昌)에 살고 있던 성리학자 정호(程顥)를 양시는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는데, 정호가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비통에 잠긴 양시는 정호의 동생이자 학문이 높은 정이를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을 이어받기 위해 친구인 유초와 함께 추운 겨울 어느 날 길을 떠나 낙양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들이 정이를 찾아갔을 때 마침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그때 정이는 집안에서 정좌하여 눈을 감고 명상 중이었는데 그들 두 사람은 정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그가 명상을 끝날 때까지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조용히 마당에 서 있었다. 그러던 중 그들은 허리까지 눈에 파묻히게 되었는데 정이 선생이 명상을 끝내고 눈 속에 서 있는 그들 두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들의 진지한 모습에 감동한 그는 이 두 사람을 제자로 맞아 자기 평생의 학문을 두 제자에게 전수했다고 한다. 이후 <정문입설(程門立雪)>은 스승을 지극히 존경하고 진심으로 배움을 청하는 의미의 성어(成語)로 전해지게 되었다.
정호와 정이는 성리학(性理學)의 핵심 개념인 이(理)를 철학의 중심에 세워 사상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그후, 남송(南宋) 시대의 주자(朱子, 1130-1200)는 ‘만물은 하나의 이치를 공유한다’는 정이의 ‘성즉리(性卽理)’와 ‘격물치지(格物致知)’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체계화 하였으며 그가 세운 성리학은 조선의 통치 이념이 되었다.
이 그림은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畵)로서, 작은 화폭 속에 겨울 풍경의 고요함과 그림이 전하고자 하는 뜻을 겸재 특유의 화필로 그렸다. 특히 정이 선생이 앉아있는 방안을 환한 노란색으로, 탁자를 주황색으로 채색하여 그림에 생동감을 준다. 눈덮인 산기슭의 초가 옆에 있는 대나무와 오래된 매화나무는 이 집이 선비의 집임을 보여주며 미점법(米點法)으로 바위와 산에 액센트를 주었다.
이 그림은 아마도 양반가의 부탁으로 그려져, 자식에게 스승을 공경하고 배움에 대한 열망을 가질 것을 가르치는 교훈화(敎訓畵)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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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용 교수 (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