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정훈 기자의 음악산책>

2026-01-22 (목) 01: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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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노의 아베마리아

<이정훈 기자의 음악산책>
비애가 없는 인생은 기도(祈禱) 없는 인생만큼이나 메마르고 비극적이다. 비애 자체가 비극인데 비애가 없는 인생을 왜 비극적이냐고 되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비애(悲哀, 페이소스)는 비극과는 다르다. 비극은 끝… 종말… 불행 그 자체를 말하고 있지만 비애는 그 비극을 바라보는 눈… 눈물… 영혼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순교자나 죽은 사람은 그 자체로 비극적이고 불행할 수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영혼은 극한 비애를 느끼며 죽음을 통해 감동하기 때문에 죽음 자체가 모두에게 불행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애를 느낄 때 비로소 기도하게 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삶을 다른 차원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종교가 있다는 것은 그러므로 한편으론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나약하게 될 수도 있고 마약 중독자처럼 자포자기한 인생으로 전락할 수도 있지만 사실 종교란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위대하고 불행 속에서도 비애를 바라볼 수 있기에 사실은 강한 것인지도 모른다.

구노의 ‘아베마리아’는 기도문에 곡을 붙인 곡으로 1859년에 발표되어 엄청난 감동을 선사했던 곡이다. 바흐의 평균율 (1번) 반주에 곡을 붙인 것으로, 처음에는 기악곡으로 써졌는데 나중에 라틴어 성모송 가사가 추가되어 많은 사람들이 신앙적 감동을 받게 되었다. 특히 이 곡은 한국과도 무관하지 않은 곡으로, 어린 시절부터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성장한 구노는 특히 조선 선교사로 떠난 앙베르 신부와도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앙베르 신부는 조선 선교중 순교하였으며 이는 구노에게 큰 충격과 종교적 감동을 남기게 되었다고 한다. ‘아베마리아’가 앙베르 신부를 생각하며 만들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구노가 조선 선교 중에 순교한 앵베르 주교, 샤스탕 신부 등을 위해 천상 승리를 노래한 현양곡을 지은 것은 사실로 알려지고 있다.

‘아베마리아’는 꽤 오래전 이 음악 칼럼을 시작하면서 한번 쓴 적이 있었다. 당시 ‘모든 음악은 아베마리아와 같다’고 적은 기억이 난다. ‘요절한 비제의 ‘아를의 여인’에서, 고독한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에서, 귀머거리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에서 모두 ‘아베마리아’의 간절함이 느껴져 온다….’ 사실이 그런 것 같다.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 우리가 힘들과 괴로울 때 미사곡, 성곡들은 우리의 지친 영혼에 무한한 위로를 가져다 준다.


아베마리아…/ 은총이 가득한 성모여 기뻐하소서/주께서 함께 하시니 여인 중에 복되며 태중의 예수 또한복되도다/ 성모 마리아여, 마리아여/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아베마리아’를 들으면 한국의 눈내리는 정경이 떠오르곤 한다. ‘아베마리아’는 슈베르트의 작품도 유명하지만 겨울 정경과 구노의 ‘아베마리아’가 겹쳐지곤 하는 것은 구노의 작품이 바흐의 선율을 반주로 깔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추측하곤 한다. 바흐가 종교 음악 작곡가였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어딘지 경건하고 기도하고 싶게 만드는 이 곡은 구노의 선율이 가미되어 이곡을 듣는 순간만은 왠지 신자가 된 듯 착각이 들게 만드는 곡이다. 당시 교회에서 카드를 만들어 (불우이웃을 돕는다고) 시내에 나가 팔곤 했었다. 엄청나게 함박눈이 내리던 밤이었다.

크리스마스 대목이어서인지 상점들은 늦은 밤까지 불을 밝히고 있었고 눈은 오직 불켜진 곳에만 하얗게 내려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불빛이 닿는 곳에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누군가 눈을 뿌리는 것 같았는데 벙어리 장갑을 끼고 손을 호호불던 우리들의 모습이 근처 전파상에서 흘러나오는 ‘아베마리아’ 등과 겹쳐져 마치 동화 속의 성냥팔이 소녀같았다.

그 당시의 겨울 동화(?)가 눈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우리들의 마음때문이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베마리아’를 들을 때면 늘 당시의 정경이 떠오르곤 한다. 인생이 힘들고 무언가가 빠진 듯 목마름이 느껴져 올 때, 순교의 거리에서… 하얀 눈, 아니 그리움과 추억을 담아 ‘아베마리아’를 들어봄은 어떨까. 늘 반목하는 세상에서 음악은 늘 흰눈처럼 기도하는 마음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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