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조별곡(花鳥別曲)
▶ 현재 심사정(沈師正, 1707-1769) (화조도 모음)
이른 봄 딱따구리 나무속 쪼려는데
매화향에 취했는지 온몸이 빨갛구나
비췻빛 물총새 연꽃 향기 들이키니
조그마한 그 얼굴에 연꽃 물이 들었다네
버드나무 가지 위엔 사이좋은 까치 한 쌍
부리 벌려 노래하니 기쁜 소식 전하려나
날개 빛 푸른 산새 붉은 열매 따려는가
동그랗게 뜬 눈이 앙증맞구나
봄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집 밖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추운 겨울에는 새들이 모두 어디 갔는지 아침이 되어도 새소리가 들리지 않아 동네는 적막하기만 하다.
18세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였던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은 명문 사대부가의 후손이었지만 가문이 역모 사건으로 풍비박산 나는 바람에 관직에 진출할 수 없어 그림을 그려 팔아 어렵게 살았다. 그는 겸재 정선에게서 그림을 배웠고 산수, 인물, 화훼(花卉), 영모(翎毛, 털 있는 짐승), 초충(草蟲, 풀과 곤충)도를 잘 그렸는데 훌륭한 화조(花鳥) 작품을 많이 남겼다. 가만히 있는 산수가 아닌 움직이는 새나 곤충을 그리는 것은 예리한 관찰력과 극적인 순간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조선시대에 화조도(花鳥圖)는 사대부 규방(閨房) 여인들이 좋아했는데, 화조도는 병풍 그림으로 그려지기도 했지만, 작은 소품의 아담한 족자로 만들어져 양반댁 안방을 장식하는데 인기가 많았고, 시집가는 규수의 혼수품에 들어가기도 했다.
여기에 소개한 네 점의 화조도는 심사정이 봄, 여름, 가을의 새를 그린 것에서 골랐다. 첫 번째의 딱따구리 그림은 현재의 화조도 중 가장 뛰어난 대표작이다. 매화꽃이 만발한 매화나무에 붉은색의 귀여운 딱따구리가 나뭇등걸에 야무지게 붙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열심히 나무를 쪼아 벌레를 잡고 있다. 굵고 오래된 매화나무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고 그 아래에는 반대 방향의 비탈이 그려져 있어 전체적인 균형을 잡아주는 구도이다. 매화의 화사함과 딱따구리의 예리한 부리, 매화꽃과 딱따구리의 선홍색이 잘 어울리고, 허공으로 떨어지는 매화 꽃송이는 정적(靜的)인 그림을 동적(動的)인 그림으로 만들어 주는 화가의 뛰어난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두 번째 그림은 비취색의 물총새가 연밥만이 남은 늙은 연꽃 줄기에 앉아서 그 아래에 핀 분홍색의 연꽃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다. 연꽃잎은 윤곽선 없이 색과 먹물만으로 형태를 그리는 몰골법(沒骨法)으로 대담하게 처리하여 물총새의 예리하고 가녀린 모습과 대조된다. 새가 부리를 벌리고 있는 것은 연꽃 향기를 마음껏 들이마셔 즐기려는 것이 아닐까.
까치는 예로부터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吉鳥)로 알려졌다. 세 번째 그림에서 버드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한 쌍의 까치 중 위에 앉은 까치는 멀리 손님이 보이는지 입을 크게 벌려 깍깍 소리 내고 있다. 까치의 열린 부리 속 노란색 채색은 이 그림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가을의 정취를 담은 마지막 그림은 날렵하고 귀여운 산새 한 마리가 호흡을 다듬는 장면이다. 대나무 옆에 있는 산사자 나뭇가지에 앉아 아래에 있는 빨간 열매를 따려는지 예리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가을이 되어 나뭇잎이 붉게 물들고 있지만 대나무잎과 줄기가 길게 뻗은 모습이 오히려 시원스럽다.
이처럼 현재 심사정은 고단한 삶 속에서도 자연의 작은 생명들을 따뜻하고 섬세한 시각으로 그려냈다. 이들 새 그림을 보며 어서 따뜻한 봄이 우리 곁에 오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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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용 교수 (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