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60년 만 ‘투자 귀재’ 없는 첫 주

2026-01-05 (월) 12:00:00 윤경환 서울경제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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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환 특파원의 트럼프 스톡커

워런 버핏 회장이 지난 1965년 섬유 회사였던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영권을 인수한 지 60년 만에 최고경영자(CEO)직을 내려놓으며 한 시대를 갈무리했다.

버핏 회장은 날카로운 통찰을 기반으로 ‘가치 투자’를 몸소 실천하며 압도적인 수익률을 거둬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의 은퇴는 특히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와 맞물린다는 점에서 한층 묘하다는 평가다.

AI의 투자 알고리즘이 자본시장을 지배하기 전, 인간의 힘만으로 최대 성과를 이룬 마지막 전설적인 투자가로 역사에 남을 가능성이 큰 까닭이다.


3일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버핏 회장은 지난해 말 버크셔 해서웨이 CEO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1일부로 비(非)보험 부문 부회장이었던 그레그 에이블 CEO가 이끌게 됐다. 앞서 버핏 회장은 지난해 2월 연례 주주서한을 통해 그해 연말 은퇴한다는 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해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다. 1965년 섬유 회사였던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한 지 60년 만이다.

버핏 회장은 올해부터 연례 주주서한도 직접 작성하지 않기로 했다. 후계자인 에이블 CEO가 이를 대신 집필한다. 버핏 회장은 이사회 의장직만 유지하면서 올 5월 2일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질문을 받지 않기로 했다. 버핏 회장은 지난해 11월 10일 ‘추수감사절 메시지’라는 제목의 주주서한을 공개하고 “에이블 부회장에 대해 내가 오랫동안 누린 신뢰를 갖게 될 때까지 상당량의 A주를 보유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버핏 회장은 1930년 오마하에서 태어난 타고난 투자가다. 11살에 첫 주식을 샀고, 10대 시절 신문 배달 등으로 모은 돈으로 농장을 매입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뛰어난 사업 수완을 보였다. 버핏 회장은 1950~1951년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가치 투자의 창시자인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를 만나 투자 철학의 기틀을 닦았다.

버핏 회장은 1965년 망해가던 직물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하면서 세계 최고 투자가의 길로 들어섰다. 코카콜라, 애플,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 우량주에 장기 투자하며 전설적인 수익률을 거뒀다. 그 사이 버크셔 해서웨이는 세계 최대 지주회사로 거듭났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버핏 회장이 이끄는 60년간 무려 610만%에 이르는 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간 버크셔 해서웨이의 연평균 주주 수익률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수익률을 압도적으로 능가했다.

지난해 9월 30일 기준 버크셔 해서웨이의 현금·현금성 자산은 3817억 달러(약 552조 원), 주식 자산은 2832억달러(약 410조 원)에 달한다. 버핏 회장의 현재 순자산도 세계 9위권 규모인 1490억 달러(약 215조 원)로 평가된다.

버핏 회장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단순히 그가 막대한 부를 쌓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버핏 회장은 세계적인 부호임에도 1958년 3만 1500달러에 산 고향 오마하의 평범한 집에서 68년째 살고 있다. 재산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기도 했다. 부를 쌓은 뒤 화려한 뉴욕에서 생활하는 월가의 다른 억만장자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누리고 있다. 버핏 회장은 명품을 멀리하고 콜라와 햄버거를 즐겨 먹는 소박한 식성으로도 유명하다.

세계인이 버핏 회장에 주목한 지점은 무엇보다 독특한 투자 철학과 뛰어난 성공률이었다. 단기적인 시장 흐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재가치가 확실한 기업을 발굴해 수십 년간 장기 투자하는 가치 투자 기법으로 많은 이에게 존경을 받았다. 버핏 회장은 복잡한 금융 공학 기법 대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원칙과 상식에 기초한 투자를 강조했다. 매년 오마하에서 열리는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도 어느새 전 세계 투자자들이 모이는 축제처럼 변모했다.

<윤경환 서울경제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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