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풍요로운 가을

2025-11-13 (목) 07:43:42 윤영순 메리옷츠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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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가까운 곳에 태풍이 지나가고 있는지 밤새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잠잠하다, 창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비를 머금은 나뭇 잎들이 고운 빛깔의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있다.

왠지 으스스 몸에 번지는 한기는 가을이 주는 텅빈 외로움 탓인지 아님 매일의 작은 피로감 때문인지 계절의 변화는 자연 만큼이나 우리 몸에도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연례 행사처럼 가을에는 여기저기 볼거리 행사가 많다. 주일날 성당의 뜻깊은 행사에 음식을 장만해야하는 품앗이로 동참하는 터라 무엇보다 컨디션 조절이 최 우선이다. 젊었을 때와는 달리 노년의 몸은 자고 일어나면 무겁게 갈아 앉아 특히 환절기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해 한해를 잘 넘기게된다.

며칠전 뜻밖의 공연 초청장을 받고 바자회 준비로 바쁜 날과 겹쳐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쉽지않아 내심 걱정스런 며칠을 보냈는데, 다행히 나 대신 지원군이 생겨 급한 불을 끄고서야 겨우 마음이 놓였다. 이렇듯 우리의 삶을 채우는 것은 우연한 작은 일들로 나를 기억하고 초대해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움을 안겨준다.


무덥던 더위도 지나가고 낭만과 풍요의 가을이 찾아왔으니 누구는 사색하는 시인이 되기도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가고 싶은 곳을 찾아 떠나기도하는 계절이다. 우리 동네에는 철따라 찾아가 산책하는 야트막한 예쁜 동산 이 하나있다. 하워드카운티의 자연 학습장 (Howard County Conservancy)으로 자연 그대로의 확트인 시야에 울창한 나무가 하늘을 찌르는 국립공원과는 풍경이 사뭇 다르다. 가을 바람에 잔물결처럼 흔들리는 갈대 숲을 걷노라면 어느듯 음송 시인이 된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곳에는 해마다 시월이 되면 그동안 주민들이 손수 가꾼 농작물, 각종 공예품과 벌통에서 따온 자연산 꿀등을 판매하는 페스티발이 열린다. 그날에는 아이들이 부모님의 손을 잡고 자연학습장에서 기르는 크고 작은 새, 토끼, 염소, 닭에 직접 모이를 주기도 하고, 높이 창공을 나르는 매와 독수리떼를 망원경으로 관찰하기도 하는데, 늙은 부엉이 한마리가 새장에 갇힌 채 몇해가 지나도록 조는듯 미동도 않은채, 살아 숨쉬고 있는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워 지나가는 사람들의 걱정스런 눈길을 끌기도한다

가을이면 기억 저편에 어김없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 옛날 국민학교시절 학교 뒷동산으로 소풍가는 날에는 모처럼 엄마들도 이웃마을 나들이마냥 아이들을 따라 나서곤 했다. 오곡찰밥에 삶은 계란과 밤, 햇바랜 누런 봉지에 정성스레 담은 사탕과 과자, 햇사과와 감으로 배를 채운 다음에는 항상 빠지지 않는 놀이에는 보물찾기가 기다리고 있다. 선생님이 나무와 바위틈 사이에 몰래 숨겨둔 쪽지를 찾아내고 보물이라도 발견한듯 깔깔대며 웃던 그 시절이 언제 다시 찾아올까?
추억의 한 페이지에 담긴 가을은 진수성찬 가득한 풍요로운 밥상같은 계절이 아닐런지….

<윤영순 메리옷츠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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