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주APEC] 관세확전 봉합·다자주의 강조…시진핑, 2박3일간 ‘존재감 과시’

2025-11-01 (토) 09: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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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역담판 후 떠난 트럼프 부재 속 각국에 “아태 결집” 제안

▶ 李대통령과는 협력 강화 모색…日다카이치에는 “침략 반성” 일침

[경주APEC] 관세확전 봉합·다자주의 강조…시진핑, 2박3일간 ‘존재감 과시’

악수하는 트럼프·시진핑 [로이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해 2박3일 간의 외교 일정을 마무리하고 1일(이하 한국시간) 본국으로 돌아갔다.

지난달 30일 방한과 동시에 시작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으로 양국 '관세 전쟁'을 잠정 봉합한 데 이어,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서는 '협력 동반자'임을 강조하며 한동안 얼어붙었던 한중 관계 회복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자국의 경제적 이익 확보를 위한 협상 무대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적극 활용한 뒤 본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은 채 귀국한 트럼프 대통령의 부재 속에서 '공동 번영'을 내세우며 각국과 손잡고 아태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미중 무역협상에서는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던 '트럼프 1기' 집권 때와는 달리 희토류, 농산물(대두) 등 준비된 대응 카드로 맞서며 비교적 대등한 선상에서 협상을 끌어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시 주석은 특유의 정제된 발언과 행보로 캐나다·태국 정상과의 양자회담을 잇따라 소화하면서도, 첫 상견례에 나선 '강경 보수'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에게는 "침략의 역사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하며 중일 관계의 긴장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 6년 4개월 만에 만난 트럼프와 '세기의 담판'…관세 확전 자제

시 주석은 지난달 30일 오전 전용기편으로 부산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지난 4월부터 계속된 미중 무역 갈등을 조율하는 것으로 방한 일정을 시작했다.

회담에서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 유예와 미국산 대두 수입 재개, 미국은 대중(對中) 관세 10%포인트 인하에 합의했다.

미국이 지난 9월29일 발표한 중국 기업 대상의 수출 통제 강화 조처와 중국이 지난달 발표한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 고급 리튬이온배터리 완제품 및 소재·기계 수출 통제 조처도 각각 1년씩 유예하기로 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번 회담으로 미국의 대중 관세율은 약 47%로 낮아졌는데, 이는 중국이 역내 라이벌들과 경쟁할만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2019년 6월 이후 6년 4개월여 만에 이뤄진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으로 미중은 수개월간 이어진 무역 전쟁의 긴장감을 다소 완화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시 주석이 회담에서 '후속 작업'에 대한 조속한 실행을 언급한 뒤 중국 측은 미국산 대두 25만t을 추가 구매하는 등 발 빠른 대응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초 중국을 방문하고 시 주석을 미국에 초청하겠다고 밝히는 등 양 정상은 정상외교를 통한 추가 협상 가능성도 열어뒀다.

다만 일각에서는 표면적으로만 무역 마찰을 봉합했을 뿐, 양측이 근본적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겨둔 상태라는 평가도 나온다.

경제 성장을 위한 중국의 기술굴기 의지와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 등 양국 사이의 갈등 원인은 단기간에 해법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향후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중국이 내놓을 카드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희토류를 협상 무기로 사용한 것은 중국의 실수라며 "중국의 레버리지는 12∼24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日다카이치와 첫 상견례서 "침략 역사 반성해야" "中인권 우려" 기싸움

시 주석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로 당선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도 31일 '첫 상견례'를 가졌다.

중일 정상은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소통을 유지하자는 데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침략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인권문제' 등 민감한 발언을 주고받았다.

시 주석은 모두발언에서 소통을 통한 양국 관계의 발전을 원한다며 유화적 태도를 보이는 동시에, 1972년 이후 양국의 외교원칙을 발표한 '4대 정치문건'의 이행을 요구하며 일본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과 주권 존중, 패권 추구 반대 등의 내용이 골자인 이 문건은 중국이 대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일본에 자주 꺼내 드는 경고의 카드다.

비공개 회담에서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1995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주변국 침략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명시한 '무라야마 담화'를 언급하며 "그 정신은 발양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뼈있는 발언을 했다.

이어 다카이치 총리는 시 주석에게 홍콩·신장 등 지역 인권과 동중국해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전했고, 시 주석은 대만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담이 시 주석과 다카이치 총리의 첫 대면임을 고려하면, 비교적 경직된 분위기에서 회담이 이뤄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중국 정부는 중일 회담 당일까지도 회담 개최 여부를 발표하지 않으면서 '강경보수'로 알려진 다카이치 총리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같은 날 시 주석은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와 8년 만의 중·캐나다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올바른 궤도'로 돌려놓기 위해 캐나다와 협력하고 싶다고 말하며 한발 다가섰다. 이후 아누틴 찬위라꾼 태국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는 경제 협력과 국경 간 범죄 근절에 함께 노력하자고 제안했다.

◇ 李대통령과 '나비 교감'…경제·문화·범죄대응 등 MOU 체결

2박3일 방한의 마지막 일정이던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양국 관계 복원 의지를 전하는 한편, 민간 교류와 인공지능(AI)·바이오 등 신흥 산업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를 모색했다.

한국에서 최근 논란이 된 온라인 도박과 보이스 피싱 등 범죄 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과 양국 국민 감정 개선도 제안했다.

중국 관영 매체의 보도에는 생략됐으나, 대통령실에 따르면 한중 양국은 중국의 한화오션 자회사에 대한 제재 문제를 논의하는 등 구체적 의제도 다뤘다. 한중간 민감한 이슈로 꼽히는 서해 구조물, 중국의 한한령(한류 제한령) 문제에도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명 대통령과의 회담은 총 97분간 진행돼, 미중(87분)·중일(30분) 회담과 비교해 긴 시간 이어졌고, 시 주석은 비교적 유화적 태도로 이 대통령을 대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30일 APEC 회의장 입구 회원국 대표들을 맞이하는 이 대통령에게는 "(선물 받은) 황남빵을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를 건네며 함께 회의장으로 걸어 들어갔고, 1일 의장국 인계식에서는 전날 만찬 행사에서 이 대통령과 현장에 등장한 '로봇 나비'를 두고 대화한 일화로 말문을 열며 환하게 웃었다.

시 주석이 공객 석상에서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고 외교적 언어로 소통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대통령에게 친밀감을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이날 인계식에서 '중국판 실리콘 밸리'로 불리는 선전에서 내년 11월 APEC을 개최한다고 밝히며 차기 APEC 의장국 의장으로서의 존재감도 드러냈다.

특히 분배를 강조하는 중국의 정책 '공동부유'를 언급하고, "혼자 들면 일어서기 어렵지만 여럿이 함께 하면 나아가기 쉽다"면서 그간 '일방주의'로 비판해온 미국에 대한 견제도 잊지 않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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