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미투자 ‘현금 비중’ 최대 관건… 결과 따라 통화스와프도 결정

2025-10-18 (토) 12:00:00 세종= 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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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관세협상 막바지 쟁점
▶ 한, 현금 투자 비중 5% 제한하면 무제한 통화스와프도 필요 없어져

▶ “20~30% 출자 타협안으로 부상”
▶ 10년 기한 분산 투자 방식도 거론
▶ 한 해 투자액 300억달러로 떨어져
▶ 정부 ‘상업적 합리성’ 앞세워 협상

대미투자 ‘현금 비중’ 최대 관건… 결과 따라 통화스와프도 결정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16일 워싱턴 상무부 청사에서 한미 협 상을 마친 뒤 건물을 나서고 있다. [연합]

관세협상을 매듭짓고자 미국에 간 한국 협상단은 대미 3,500억 달러 투자 펀드의 방식과 구조, 기한 등을 두고 미국과 협상에 집중하고 있다. 투자 구조가 정리돼야 필요한 외화 액수가 산출되기 때문이다. 현금 투자 비중을 5%로 제한하면 외환시장 충격을 피할 수 있어서 우리 정부가 요구한 무제한 통화스와프도 굳이 필요가 없어진다. 우리 정부는 현금 투자 비중을 20~30% 수준으로 올리든, 투자 기한을 최대한 늘리든 우리 외환시장에 충격을 줄이면서 ‘상업적 합리성’을 갖추기 위한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일단 정부는 미국에 지분(현금) 투자 비율 5%를 요구하고 있다. 3,500억 달러 중 95%는 우리 정부가 보증이나 대출로 투자해 막대한 외화 수요를 피하겠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500억 달러 펀드는 ‘선불’(up front)이라며 현금 투자 원칙을 강요하면서 스텝이 꼬였다. 우리 정부의 외환 보유액은 9월 말 기준 4,163억 달러로 3,500억 달러 전액 현금 투자할 경우 외환위기를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에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요청했으나 미국 정부는 독립기관인 연방준비제도(Fed)의 인준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타협점으로 지분 투자 비율을 일정 수준 높이는 방안이 제시된다. 한국은 전액 현금 투자 부담을 피할 수 있고, 미국도 무제한 통화스와프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없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가장 현실적인 타결안은 현금 출자 비중을 20~30%로 상향하는 것”이라며 “잔여분은 미국 투자를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법인(SPC)이 자금을 차입할 때 한국 정부가 보증을 서주고, 이자 부담을 한국 정부가 지면 된다”고 말했다.


분산 투자 방식도 거론된다. 미국의 요구대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3년간 전액 현금 투자를 하면 한 해에만 못 해도 1,000억 달러가 필요하다. 다만 10년으로 투자 기한을 늘리면 한 해 투자 금액이 300억 달러로 떨어진다. 이는 외환 보유고의 7% 수준이다. 물론 3,500억 달러 투자금액 자체를 낮출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게 중론이다.

우리 정부가 끝까지 지켜냈던 농산물을 양보하고 다른 부족한 부분을 취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대표적인 게 미국산 대두다. 중국이 미국산 대두 수입을 중단한 이후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미국산 대두 수입을 늘려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농산물 관련 새로운 협상 소식은 듣지 못했고, 유일하게 들은 건 대두 정도”라고 말했다.

정부는 ‘상업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협상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일본의 5,500억 달러 투자 펀드처럼 미국이 투자 수익의 90%와 투자처 결정권까지 가져가는 일은 피하겠다는 게 정부의 기본 원칙이다. 전문가들은 투자 방식과 구조를 잘 짜면 달러 수요를 억제할 수 있다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무역 전문가는 “반도체나 배터리, 원전 같은 한국 기업이 수혜받을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처를 선정하고, 정부가 이들 기업에 원화 보증을 통해 기업들이 미국 현지에서 달러를 조달하면 일석이조”라고 강조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서 특파원단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 통상협상의 본체는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진행되고 있는데, 협상 진행에 따라 필요한 외환 규모가 달라진다”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전 타결을 목표로 하지만 시기보다 국익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세종= 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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