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MP, 전문가 인용 “칩 경쟁에서 중국의 대응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
▶ 블룸버그 “ASML 반도체 장비 출하 지연될 듯…美업계도 희토류 자석 가격 상승 우려”

미국과 중국 국기 [로이터]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강화 조치에 첨단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관련 용도의 희토류 수출신청을 따로 심사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간 것을 두고 중국이 반도체 병목현상을 대부분 해소했으며, 그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관련 산업 전반에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9일(현지시간) 중국산 희토류와 가공 기술을 이용한 해외 생산 제품도 수출통제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희토류 수출통제 강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14nm(나노미터)급 이하 시스템 반도체(로직칩)와 256단 이상 적층 메모리 반도체 관련 용도 희토류 수출 신청을 개별적으로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최종용도가 14nm 이하의 로직칩과 256층 이상의 메모리반도체, 해당 공정 반도체를 제조하는 생산장비·테스트장비·재료, 잠재적 군사 용도의 인공지능의 연구·개발인 수출 신청은 사안별로 심사해 승인한다"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1일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해당 조항이 중국의 반도체 장비 병목 현상이 대부분 해소됐음을 의미하며 이는 미중 반도체 전쟁에 새로운 전선을 열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2019년부터 중국의 첨단 칩 제조 장비 접근을 억제하면서 중국은 최첨단 반도체 양산에 필요한 외국산 핵심 장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반도체 생산 자립 가속화로 해외 의존도가 낮아지게 되면서 관련 외국 기업을 겨냥한 제재에 나설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중국 IT분야 전문가 샹리강은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서 해당 규정을 보고 "매우 놀랐다. 이 조항은 중국이 반도체 장비 병목현상을 대부분 해결했음을 시사한다"며 "나는 낙관주의자이지만 병목현상이 이렇게 빨리 해결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희토류 통제 강화가 외국의 첨단 리소그래피(실리콘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공정) 시스템 제조업체에 미칠 영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서 "중국 칩 산업은 더는 연구개발 장애물에 직면해있지 않다. 이미 해결된 문제다"라고 부연했다.
희토류는 첨단 기술 분야와 방위산업 등에 필요한 핵심 소재로 중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약 70%, 정제·가공은 80% 이상을 틀어쥐고 있어 사실상 독점 공급자 위치에 있다.
희토류는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에도 필수다. 네오디뮴이나 중국이 지난 4월 수출통제 대상에 올린 중희토류 디스프로슘의 경우 리소그래피 장비 내부 정밀 모터에 사용된다.
중국이 이런 소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를 생산·유지하려는 외국 기업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
SCMP는 상무부가 언급한 '14nm 이하 로직 칩과 256단 이상 적층 메모리 메모리칩'이 "오늘날 가장 발전된 칩 생산을 정의하는 두 가지 벤치마크다. 해당 수준의 칩은 고성능 컴퓨팅과 AI 시스템을 구동하는데 쓰이며 미국이 중국의 발전을 막으려 시도하는 바로 그 분야"라며 "글로벌 칩 경쟁에서 주요 광물과 관련한 중국의 대응은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세계 1위 반도체 제조공정 장비 기업인 네덜란드 ASML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강화로 당장 제품 출하가 몇주일 지연될 수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를 인용해 ASML이 이번 수출통제 조치와 관련해 혼란에 대비하고 있으며 네덜란드와 미국 등 동맹국을 상대로 대안을 찾으려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ASML 장비 출하가 지연되면 그 영향은 전세계 반도체 업계에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TSMC, 인텔 등 세계 주요 반도체 제조사들은 ASML 장비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의 주요 반도체 기업 고위 관리자는 아직 새 수출통제 조치의 영향을 평가하는 중이지만 "현재 직면한 가장 분명한 위험은 희토류 자석의 가격 상승"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미국 칩 회사 관계자도 중국의 이번 조치로 희토류 공급망이 중단될 것을 걱정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제한 조치는 반도체 산업을 겨냥해 외국 기업에 광범위한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중국의 첫 번째 주요 시도로, AI 붐을 주도하는 칩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광물안보 프로그램 책임자인 그레이슬린 바스커런은 이번 조치가 "중국이 활용한 가장 엄격한 수출통제 조치"라며 "그들이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업이 이를 준수하게 만들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