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투 발발 75주년 맞아 미군 참전용사 초청행사
▶ “267명 중 17명만 생존” 극한 추위 등 당시 증언

지난 4일 워싱턴 DC 근교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한 호텔에서 열린 6·25전쟁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 및 후손 초청 만찬 행사에서 참전용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연합]
6·25 당시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미군 용사들과 그 후손들이 한국전 발발 75주년을 맞아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워싱턴 DC 근교 알링턴 내셔널 랜딩 호텔에서 모였다. 이들은 피로 지킨 자유와 한미동맹의 가치를 되새기며 우의를 다졌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겨울 개마고원 장진호 일대까지 북진했던 미 해병 1사단이 중공군 7개 사단에 포위돼 전멸 위기에 처했다가 포위망을 뚫고 철수한 과정을 말한다. 1950년 11월27일부터 그해 12월11일까지 벌어진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 사상자(동상 등 비전투 요인 포함) 규모는 1만7,000명 이상인 것으로 한국 측에서는 보고 있다. 중국 측도 자국군 사상자가 동상에 따른 피해를 포함해 5만명 이상인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전국 각지에서 참전용사와 후손들이 참석했다. 버지니아에서는 미 해병대 제 1사단 하사관으로 인천상륙작전과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루디 미킨스가 딸과 함께 자리했다. 지난 4일 낮 행사에는 미 육군 제 7보병사단 수송부대 소속으로 1950년 10월 원산에 상륙해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조 애거(97세, 예비역 중사)가 당시의 생생한 전투 경험을 소개했다. 장진호 전투에는 미 해병 제 1사단과 함께 미 육군 7사단이 투입됐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온 애거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흑인으로만 구성된 267명이 원산에 상륙했고 이후 수송부대로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는데 정말 추웠고 많은 미군들이 동상으로 고생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우리는 중공군에 포위된 아군을 남쪽으로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많은 이들이 전사했고 나는 17명의 생존자중 한명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상병 계급의 분대장으로 복무했으며, 이번 행사에는 딸과 함께 참석했다.
4일 밤에는 동원그룹 계열사인 스타키스트가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 및 후손 초청 연례 만찬 행사를 개최했고 윤형진 주미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이길현 보훈관 등이 함께 했다. 미 한국전참전용사협회의 한국담당인 이응철씨는 “매년 장진호 전투 참가자들이 모임을 갖고 있다”면서 “올해는 참전용사와 후손을 합쳐 약 40명이 참석했다”고 전했다.
이 행사를 주최한 스타키스트의 민은홍 대표는 워싱턴 DC의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 새겨진 글귀인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를 참석자들과 함께 외쳤다. 또 이길현 보훈관은 장진호 참전용사 후손에게 ‘평화의 사도’ 메달을 수여했다. 버지니아주 레스턴에 위치한 수산업 회사 스타키스트는 2008년 동원그룹에 의해 인수되기 전부터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 만찬 행사를 후원해왔다.
<
이창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