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도·이발·체력관리 얘기도…NYT “소대장·중대장이나 훈시할법한 내용”
국방부가 지난달 30일 연 전군 지휘관 회의는 예비군 중대장 소령 출신 국방장관이 산전수전 다 겪은 현역 장성 800여명을 '집합'시켜 '생활습관 지도'와 '정신교육'을 하는 자리였다.
세계 최강 미군을 지휘하는 국방장관이 장성들을 대대적으로 본토에 불러놓고 너무 지엽적이거나 정치적인 내용에 중점을 두고 연설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오전 8시께부터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병대 기지에서 열린 행사에서 피트 헤그세스 장관은 45분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시간 10여분간 훈화를 했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군의 현 상황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헤그세스 장관의 비전은 거의 전적으로 그가 한 12개월간의 이라크 복무와 육군 주방위군 소령으로서 했던 경험으로 형성됐다"고 평가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프린스턴대 학군단(ROTC) 출신으로 2003년에 임관하고 현역 및 예비역으로 복무했으며, 2014년 예비역 소령으로 진급하면서 평시 소집이나 훈련 의무는 없으나 유사시에 비상소집될 수 있는 '개인긴급예비군'(IRR)으로 편입됐다.
NYT는 헤그세스 장관의 연설 중 많은 부분이 "이라크 주둔 제101 공수여단에서 젊은 소대장이었을 때나 주방위군 소속 중대장이었을 때에 다뤘을 법한 이슈들에 집중됐다"고 소개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턱수염, 긴 머리, 피상적인 개인 표현"은 이제 허용되지 않는다며 "이발을 하고 면도를 하고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솔직히, 전투 대형이든 무슨 대형이든 뚱뚱한 병사들을 보면 피곤하다"며 "마찬가지로, 국방부 청사 내에서 뚱뚱한 장성들이 보이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또 최근 10년 사이에 자의적인 인종별·성별 쿼터를 맞추기 위해 전체 군의 기준이 낮춰졌다고 주장했으나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들을 바로잡는 것이 제2차세계대전 후로 전쟁을 이기는 능력을 잃어버렸던 군을 고치는 첫걸음이라고 헤그세스 장관은 말했다.
NYT는 이번 행사에 소집된 고급 지휘관들이 대부분 핵잠수함 정비, 미국의 글로벌 동맹 관리, 공중작전 명령 개발 등 복잡한 군사작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일부 사람들이 보기에는 헤그세스 장관의 연설이 청중에게 적합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러면서 소집된 장성들이 헤그세스 장관의 연설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면서 "하지만 적어도 일부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을 공산이 크다"고 논평했다.
해병대 장교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했으며 중앙정보국(CIA) 특수활동 요원을 지낸 엘리엇 애커먼은 "전원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싸우면서 잔뼈가 굵은 고급 장교들에 대한 정신나간 모욕"이라고 NYT에 말했다.
아침마다 체력단련을 한다고 말해온 헤그세스 장관은 "모든 것은 체력과 외모부터 시작한다. 만약 전쟁장관이 꼬박꼬박 힘든 PT(미군의 육체단련체조)를 할 수 있다면, 우리 합동 군의 구성원 모두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 선임고문으로 일했던 전쟁사 연구자 엘리엇 코언은 "그(헤그세스 국방장관)는 군 생활을 그다지 잘 하지는 못한 주방위군 소령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며 "그에게는 팔굽혀펴기, 턱걸이, 퓨질 스틱(총검술 훈련에 쓰이는, 두꺼운 패딩을 덧댄 훈련용 막대기)가 전부"라고 논평했다.
헤그세스 장관에 이어 등장한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을 시작하면서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방을 나가도 된다"며 "물론 당신의 계급도 날아가고 미래도 날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에 대해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망신스러운 날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우리가 돌아간다(아프가니스탄에 다시 주둔키로 했다는 뜻).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군사훈련을 받는 대입 준비 사립학교인 뉴욕군사학교(NYMA)에서 고교 시절 4년을 보내고 대학 1학년 때 ROTC에 등록했다가 이듬해에 그만두는 등 도합 5년간 군사훈련을 받기는 했으나 실제 군 복무 경력은 전무하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헤그세스 장관이 군인 정신을 강조하면서 1990년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으나 당시는 군의 추악한 면을 드러낸 사상 최대의 추문 중 하나인 '테일훅 사건'이 발생할 즈음이었다고 분석 기사에서 지적했다.
1991년 9월에 미국 해군·해병대 항공대 사조직인 '테일훅'이 라스베이거스 힐튼 호텔에서 연례 모임을 열었을 때 여성 83명과 남성 7명이 집단강간과 성추행 등 피해를 당했다.
이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해군 자체 조사가 이뤄져 장성 10여명을 포함한 수백명의 해군·해병대 항공대 장교들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됐으나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시 사건 처리를 담당한 해군장관, 해군 법무실장과 조사본부장 등 해군 고위 관계자들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고 시도했다는 사실이 1992년 국방부 감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