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야기 가득한 ‘조선명화’ 읽기

2025-09-16 (화) 07:54:08 최규용(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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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답목우(耕畓牧牛)

▶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 <밭가는 소를 몰다> 해남 녹우당(綠雨堂) 소장

이야기 가득한 ‘조선명화’ 읽기
봄이 되니 농부의 쟁기질 바쁘구나
이랴 이랴 재촉해도 느릿느릿 가는 소야
산골짜기 퍼져가는 워낭 소리 정겹구나
종달새 노래하며 푸른 하늘 날아가고
엄마 소와 송아지 한가하게 풀 뜯는데
한가한 목동은 낮잠만 자고 있네
무르익는 춘삼월 아름다운 이 강산

공재 윤두서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증손이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외증조이다. 부유한 명문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당쟁이 심해지자 벼슬을 포기하고 고향인 해남에서 일생을 학문과 시, 그림에 쏟으며 지냈다. 그는 중국의 과학과 기술에 관한 많은 서적을 구입하여 섭렵하고 특히 중국의 화보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여러 가지 화풍에 대하여 연구했다. 이러한 그의 학문적 자세는 그가 평범한 사람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갖게 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가 그린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가 해남 윤씨가전고화첩일괄(海南尹氏家傳古畵帖一括)에 들어있는데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보다 151년 전에 그려졌다. 또한 쥐의 수염 털로 만든 붓, 즉 서수필(鼠鬚筆)로 그린 그의 자화상이 가장 유명하기도 하다(생각해 보시라. 서수필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쥐를 잡아 수염을 뽑아야 했겠는가. 공재가 부유하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공재는 서민 백성들의 삶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그들의 사는 모습을 그렸다. 그의 그림은 그림 속의 사람이 주인공이고 풍경이나 산수는 배경에 불과하였다. 양반이 평범한 백성을 그림의 대상으로 한 예는 공재의 그림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

이 그림은 산수풍속화(山水風俗畵)로 따뜻한 봄날 농부가 소를 몰며 산기슭의 밭을 가지런하게 갈고 있고, 어미 소와 송아지가 풀을 뜯는데 목동은 나무 그늘 아래 한가롭게 누워있는 모습을 그렸다. 먼 산은 관념산수화풍으로 그렸고 그림 왼쪽에 상세하게 그려진 커다란 나무 두 그루는 중경(中景)으로 그려진 밭 가는 농부와 소를 돋보이게 한다. 나무 아래의 큰 바위들은 단조로울 수 있는 풍경화에 박력감(迫力感)을 주는 효과가 있다. 이 그림을 혼자 조용한 곳에서 보고 있으면 소를 모는 농부의 이랴 이랴 하는 소리와 묵묵히 밭을 가는 착한 소의 딸랑딸랑하는 워낭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여 우리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명작이다.

<최규용(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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