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무회의 소집·사후 선포문 작성 등
▶ 계엄에 합법적 형태 만들려고 시도
▶ 김용현과 국무위원들 정족수 점검
▶ 계엄 해제 고의 지연 정황도 드러나
12·3 불법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 중인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29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선포 계획을 들은 뒤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하고, 사후 선포문 작성에 관여하는 등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에 합법적 외관을 씌워주려 했다는 게 특검팀 수사 결론이다.
특검팀은 이날 계엄 당일 한 전 총리의 구체적 행적을 추가 공개했다. 한 전 총리가 ‘계엄의 주동자’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함께 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정족수 충족에 필요한 국무위원 수를 세거나,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전화해 회의 참석을 재촉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특검팀은 한 전 총리가 대통령의 자의적 권한행사를 견제하지 않아 ‘부작위에 의한 작위 의무’를 위반(방조)한 데 더해, 적극적 행위로 계엄 선포에 조력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검팀은 한 전 총리가 국무총리로서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무를 보좌하면서도 자의적 권한 행사는 견제할 의무를 저버리고 불법 계엄을 방조했다고 판단했다. 박지영 특별검사보는 “한 전 총리는 대통령의 위헌, 위법한 비상계엄을 막을 수 있던 최고의 헌법기관”이라며 “그럼에도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헌법질서를 유린할 것을 알면서도 헌법적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기소 배경을 설명했다. 한 전 총리에게 적용된 혐의는 △내란 우두머리 방조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공용서류 손상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위증 등이다.
한 전 총리가 불법계엄에 반대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적극 행위’로 계엄 선포를 도운 정황들도 추가 포착됐다. 특검팀이 확보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 대접견실 CCTV 영상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계엄 주동자’인 김용현 전 장관과 함께 출석한 국무위원의 수를 세며 정족수가 충족됐는지 점검했다. 김 전 장관은 대화 중 손가락을 몇 개씩 펼치기도 했는데, 특검팀은 정족수 충족까지 필요한 국무위원 수를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팀은 이같은 행적이 계엄 선포의 사전 절차인 ‘국무위원 심의’를 내실있게 진행하는 대신 회의 정족수만 채워 형식적 외관만 급조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 전 총리 역시 송미령 장관에게 전화해 회의 참석을 재촉하는 등 정족수 충족을 도왔고, 정족수가 채워지자마자 나머지 국무위원을 기다리지 않고 회의를 시작했다. 특검팀 수사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계엄날 오후 8시 대통령 집무실에 먼저 불려가 ‘체포’ ‘처단’ 등 내용이 담긴 위헌·위법적 포고령 내용을 미리 확인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무위원 의견을 들어봐야 하니 국무회의를 소집해야 한다’고 건의하는 수준으로는 국무총리에 부여되는 헌법적 책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게 특검팀 시각이다. 특검팀은 오히려 한 전 총리가 국무회의 소집으로 불법계엄에 절차적 정당성을 보완하며 동조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팀은 CCTV와 국무위원 진술 등을 종합해 한 전 총리가 대다수 국무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엄 관련 문건에 서명할 것을 요구한 사실도 파악했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위해 대접견실을 떠난 후 대통령실 직원이 참석자 서명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한 전 총리가 국무위원들에게 “참석했다는 의미로 서명하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에 응한 국무위원은 없었다. 한 전 총리는 이후 조태열 당시 외교부 장관이 수령을 거부해 두고 간 문건을 직접 수거하기도 했다.
한 전 총리가 계엄 해제를 고의적으로 지연시키려 한 듯한 정황도 있다. 국회 상황을 보고 있던 국무조정실장이 “계엄 해제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지만, 한 전 총리는 “기다리라”며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가 정진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연락을 받고서야 뒤늦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지난 3월 27일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한 전 총리 탄핵소추를 기각하며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하는 등 적극적 행위를 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나 객관적 자료는 찾을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특검팀은 수사를 통해 한 전 총리의 일련의 행적을 밝혀낸 만큼, 헌재가 미흡하다고 봤던 ‘적극 행위’ 부분도 충분히 보완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검팀은 한 전 총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법원에서 기각된 지 이틀 만에 불구속 기소를 결정했다.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며 “법적 평가와 관련해 다툴 여지가 있다”고 밝혔지만 중요한 사실관계들에 대해선 인정한 만큼, 신속한 법원 재판을 통해 조속히 정의가 실현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는 게 특검 측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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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광현·이유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