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음악 산책>
2025-07-25 (금) 09:08:19
살다보면 누구나 가끔은 문득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생각날 때가 있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는 목공예를 하면서 차이코프스키를 듣던 시절이 바로 그 때인 것 같다. 아마도 목공예하는 것이 적성에 맞았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두 손에 조각칼과 목판,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 하나면 족하던 시절이었다. 나무판에 무언가를 조각하고 있으면 가난에 대한 생각이나 대단한 그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야망도 잊고 그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에 행복감이 만땅이던 시절이었다. 물론 조각이라는 것이 묘하게도 장인정신(?)을 자극하는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행복해 했는지는 모르지만 문제는 트랜지스터를 통해 흘러나오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정서적 균형을 맞춰주는 자극제가 되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왜 나는 그 당시 조각을 하면서 음악을 들어야 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행복이라는 감정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일까? 그러한 의문이 아마도 지금까지 음악을 취미삼고 있는 이유가 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음악이 없는 삶이란 자기도취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지금도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지만 음악이 없는 삶이란 나에게는 그저 니체의 말대로 실수(mistake)에 불과할 뿐이다.
당시 나에게는 고장난 도시바 야외 전축이 한 대 있었다. 소리는 빵빵한데 전축기능이 고장나 라디오만 듣고 있었다. 유명한 명곡은 그 당시 그 고장난 전축으로 대부분 다 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아무리 비싼 오디오를 소유하고 있어도 그 때 그 당시의 감동은 재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때가 바로 인생의 꽃 피던 시절이었고 음악의 첫사랑이 시작되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행복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일 것이다. 그것은 생계에 바빠 조각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리 여유가 많아도 이제는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영혼이 가난할수록 반비례로 행복해 질 수 있는 존재이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기때문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단순한 것이며 행복도 가장 단순한 것에서 오기 때문에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내가 고장난 전축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 때가 꼭 아름다움으로 점철됐던 시절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위대한 것의 시작이란 간절함과 순수함이지 물질의 크기, 여유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음악이 없는 삶은 그저 실수(mistake)일 뿐이다- 한 철학자의 헛소리 일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음악이 들어오는 길목이 영혼의 가난함과 간절함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갈 수 밖에 없다. 과연 세상에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첫 사랑 같은 (그 아름다운) 영혼의 바람이 없는 인생을 살 가치가 있는 것일까?
철학가 니체가 살아 생전 가장 좋아했던 작곡가 중의 한 명이 바로 오페라 ‘카르멘’의 작곡가 비제였다고 한다. 물론 니체가 ‘카르멘’이라는 오페라를 봤을 때는, 음악가 비제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 였지만 니체가 지중해의 바그너라고 극찬했던 작곡가가 바로 비제였다. - 비제야말로 사람의 영혼을 간절하고도 순수한, 열정의 화신으로 몰아가는 작곡가같았다고나할까. –
비제의 음악은 단순하면서도 가난한 그 무언가가 있다. 애절하지만 지나치지 않고, 쓸쓸하지만 넉넉하게 피어나는 아련함…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37세로 요절한 비제의 삶이 마치 묘지 옆의 야생화처럼 피어나곤하지만 서글픈 아름다움이야말로 뛰어난 감수성과 미적 감각으로 칠해진 풍경화를 보는 듯 생생하다. 비제는 왠일인지 그의 오페라 ‘카르멘’의 3막 간주곡(Intermezzo)에서 엉뚱하게도 작품의 열정과 정 반대되는 매우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을 삽입했는데 마치 영화 속의 카메오같다고나할까. 오페라, 아니 인생의 시끄러움과 지나친 열정을 식혀주고 싶었기 때문인지 간주곡이라기 보다는 마치 나무그늘같이 서늘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쉼을 선사한다. 비제 자신의 모습을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목가적이면서 애잔한 선율은 억겁의 세월을 흘러가는 우주 속의 지구, 우리의 모습같기도 하다. - 행복은 결코 돈으로 살수 없다.- 뻔한 진리를 알면서도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산너머 저 곳에는 과연 행복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비제의 간결하고도 아름다운 간주곡이 우리네 삶의 허무한 질주를 비탄해 하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