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 칼럼] 디아스포라 난민들
2025-07-15 (화) 12:00:00
박영실 시인ㆍ수필가
정원에 있는 화분에 시선이 흘러갔다. 씨앗이 어디서 날아와 뿌리를 내렸는지 어느새 꽃을 피웠다. 생명이 있는 것은 어디서든 호흡하고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간다. 미풍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필자가 만났던 난민들과 오버랩되는 느낌을 받았다.
중동 지역과 튀르키예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 튀르키예는 디아스포라 난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다. 특별히 시리아 난민들을 곳곳에서 많이 마주했다. 2010년 12월에 튀니지에서 시작된 쟈스민 혁명은 중동지역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쟈스민 혁명은‘아랍의 봄’의 물결을 일으킨 시발점이 되었다. 2011년 3월에 발발한 시리아 내전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쟈스민 혁명의 영향이 크다. 내전 결과, 시리아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본토를 떠나 곳곳에 흩어져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시리아는 지난 14년 동안의 내전으로 61만 명 이상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시리아 난민 중 500만 명 이상이 튀르키예에 거주하고 있다. 시리아 난민들이 거주하는 주요 도시로는 이스탄불, 아다나, 메르신, 가지안텝, 산르우르파 등이 있다. 실제 튀르키예 일부 지역에서는 자국민들보다 시리아 난민들이 더 많이 거주하고 있을 정도다. 전쟁과 고통으로부터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었지만 그들의 현실은 참혹했다. 2023년에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서부지역에 7.8의 강진이 발생했다. 그 지진은 내전을 피해온 난민들의 삶을 또 한 번 앗아갔다.
난민들을 마주하며 몇 년 전에 관람한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레바논 출신 나딘 라바키 감독의 작품《가버나움》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레바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4년에 독립한 나라다. 이 영화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디아스포라 난민들의 삶을 조명하는 사회고발 영화다. 주인공 알 라피아 소년은 시리아 난민 출신으로 레바논에서 팔 년 동안 거주했다. 감독은 알 라피아의 시선을 통해 불가항력적 상황에 있는 난민들과 사회 약자들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가버나움》영화가 상영되던 시기에 세상에 충격을 던져준 사건이 있었다. 튀르키예의 지중해 해안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시리아의 아일란 쿠르디 사진과 동영상은 전 세계의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 사회는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과 세계 곳곳에 흩어지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문을 닫고 있었다. 그 결과, 어린이들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이 지중해에 목숨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쿠르디의 사건을 계기로 유럽이 난민 수용에 대해 좀 더 열린 태도를 보이게 되는 도화선이 되었다.
영화 《가버나움》과 어린 쿠르디의 죽음은 난민들을 외면한 국제 사회를 깨우는 위력이 있었다. 난민들을 마주하며 디아스포라 이민자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했다. 본토를 떠나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난민들의 삶에도 언젠가 봄 햇살이 내려앉길 소망한다.
<
박영실 시인ㆍ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