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다시보기] 정오의 휴식
2025-06-27 (금) 12:00:00
신상철 /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19세기 프랑스 자연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신앙심 깊은 시골 농가에서 자랐다. 그의 주요 작품들은 하층 농민들의 고난과 노동하는 모습을 담고 있어 그는 ‘농부의 화가’라고도 불렸다. 밀레는 농민들이 구약성경 창세기 3장 19절의 말씀을 가장 고귀하게 이행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이 성경 구절은 사실상 밀레의 모든 작품을 설명해주는 키워드라 할 수 있다.
1848년 혁명 직후 밀레는 파리 근교에 위치한 시골 마을 바르비종에 정착해 전원을 소재로 한 작품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이곳에서 활동하던 그의 동료 화가들은 주로 풍경화를 그렸지만 밀레는 자연 속에 파묻혀 노동하는 인물들을 묘사하는 데 주력했다. 그의 1866년 작 ‘정오의 휴식’은 농민들의 육체노동에서 경건한 삶의 미덕을 찾고자 한 그의 세계관이 잘 표출된 작품이다. 이 그림에 구현된 화풍은 밀레의 초기 작품들을 특징짓는 사실주의 기법과 사뭇 다르다. 차분한 색상과 흐릿한 형상은 그림 속 상황에 서정성을 부여해주며 거친 표면 처리는 모네의 인상주의 화법을 연상시킨다. 담황색 종이 위에 검은색 크레용과 노란색 파스텔을 사용해 밀 다발의 질감과 황금빛 톤을 만들어 낸 방식도 독특하다.
그림 중앙에는 추수 작업에 지친 부부가 건초 더미 그늘에 누워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하루 일과가 고됐던지 이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옆에 놓인 한 쌍의 낫과 신발 그리고 뒤편에 서 있는 두 마리의 소는 부부의 동반자적 관계를 대변해준다. 한낮의 태양을 피하는 휴식 시간만이 이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쉼과 회복의 기회인 듯 부부는 서로의 존재에 의지한 채 고단한 노동의 일상을 견뎌내고 있다. 애틋함과 평온함이 공존하는 이 광경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서서히 물러나야 할 것처럼.
<신상철 /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