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금요단상] 서울 스케치

2025-06-27 (금) 12:00:00 이희숙 시인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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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통과하는 나들이 나왔다. 아련하고 못다 한 마음으로 찾는 곳이 고국 방문인 듯하다. 떠나보내며 눈물을 글썽이고, 맞이하는 기쁨으로 얼굴 비비는 곳, 공항 풍경은 애틋한 향취가 물씬거린다. 40년이란 긴 세월을 지나 돌아왔건만, 어제인 듯 가슴이 열리며 가까이 다가가는 고향이다. 분주하게 굴리는 캐리어 바퀴 소리가 공항에 가득 찬다. 마치 문을 열면 엄마가 서 계실 것 같아 서두르는 모양새랄까.

이젠 다민족 행렬 속에 국제공항이 된 인천이다. KAL기 고객 중 타 아시안들이 서울을 경유해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는 사람이 많았다. ‘공항을 넘어 세상을 바꿉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뜨인다. 공항은 바로 더 넓은 세상과 연결하는 문이 아닐까. 지평을 넓히는 역사적 순간을 품은 공간이 될 터이다. 인천 공항에 내리니 까다로운 절차와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긴장감 대신 묘한 평안함이 몰려왔다.

시원하게 뻗은 영종교가 서울로 연결해 주었다. 셀 수 없으리만치 많은 다리, 그 곁에 조성된 공원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했다. 휴식과 즐거움을 제공해주기에 충분했다. 흐르는 한강의 유유한 물줄기가 긴 역사를 품고 있는 듯했다.


서울은 백제 위례성,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한 한양에서 이어진 대한민국의 수도이다. 서울 마포 동생 집에 머물렀다. 성냥갑 고층 아파트 숲에 가로막힌 듯했지만, 넓은 유리창 너머의 남산, 한강을 바라보니 마음이 탁 트였다.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많은 사람의 활보에 놀랐다. 골목골목 길가에 늘어선 상가와 상인들의 손길에 살아있다는 활력을 받았다. 서울의 발전상에 대단하다는 감탄을 연발했다고 할까. 자연경관을 비롯해 문화 공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서울의 진미를 맛볼 수 있지 않은가. 여행자 시선만이 아닌 젊은 날 필름이 담긴 서울에 애착이 가는 건 인지상정이리라.

교통체증이 심한 시내를 돌아 남산을 향했다. 낯익은 이태원, 효창공원을 지나 목멱산에 올랐다. 목멱산은 경복궁에서 바라봐 남쪽에 있었기에 남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북쪽의 북악산, 동쪽의 낙산, 서쪽의 인왕산과 함께 서울 중앙부를 둘러싸고 있다. 능선을 따라 도성이 쌓아 올려졌다. 남산에 봉수대를 설치해 봉(횃불)과 수(연기)로 급한 소식을 전하는 통신으로써 국가의 정치·군사적 국가 비상사태를 알리지 않았던가.

랜드마크인 남산 타워 아래 시립 남산 도서관이 자리했다. 학창 시절 주말에 도시락을 싸 들고 열공했던 생각에 미소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 시민을 품어 지식을 담고 미래를 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남산 둘레길을 걸었다. 실개천을 돌며 야외 식물원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굽은 듯하지만 멋진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가 숲을 이루었다. 우리 애국가에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하다는 구절이 있지 않은가. 그 기개로 수백 년을 지켜온 소나무들이 울창했다. 빨강 열매를 매단 앵두나무가 돋보였다. 철 따라 각기 각양의 꽃을 피워낸단다. 숨겨진 남산의 매력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삼삼오오 운동 나온 아낙네들, 지긋한 연세를 풍기며 여유 있게 걷는 어르신네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시민 여가선용과 힐링을 위한 공간인 셈이다. 발아래 한강이 펼쳐진다. 생명의 원천인 물과 공존하는 삶의 기억이 서울을 사랑하는 이유다. 여전히 한강은 지성의 역사 줄기 따라 흐르고 있다.

<이희숙 시인ㆍ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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