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화 이야기

2025-06-25 (수) 07:59:56 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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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배가 더부룩하거나, 찬 음식을 먹은 뒤 속이 금세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많다. 단순히 음식 때문일까? 이 질문에 대해 한의학과 현대의학은 각자의 언어로 설명하지만, 그 설명의 맥락을 살펴보면 이 둘은 서로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두 학문은 모두 소화 건강을 지키기 위해 중요한 두 가지 요소, ‘온도’와 ‘균형’을 강조한다.

비위(脾胃)―몸속 보일러의 불씨를 지켜라

한의학에서 ‘비위(脾胃)’는 소화와 영양 흡수를 총괄하는 개념이다. 비장이 영양분을 온몸으로 운반해 기혈을 만들고, 위가 음식물을 받아 분해하지만, 두 기관을 하나의 아궁이나 보일러로 보는 까닭은 따뜻한 양기(陽氣)가 충분할 때만 전신에 에너지가 골고루 퍼지기 때문이다. 지나친 찬 음식은 활활 타던 불길에 찬물을 들이붓는 격이어서 소화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특히 요즘처럼 날씨가 더워질 때 무턱대고 찾는 냉면이나 아이스크림, 차가운 샐러드는 소화 기능에 큰 부담을 주는 대표적인 예다.


소화 효소와 마이크로바이옴―현대의학의 미세 퍼즐

현대의학은 같은 현상을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바라본다. 소화 효소가 음식물을 잘게 쪼개려면 위와 장의 체온이 일정해야 하는데, 온도가 내려가면 효소 반응이 둔해지고 근육 운동도 줄어든다. 동시에 장내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이 비타민 합성, 면역 조절, 노폐물 분해를 맡는데, 스트레스나 부적절한 식습관으로 생태계 균형이 깨지면 유해균이 득세하여 가스, 변비, 설사,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나타난다. 한의학이 경계하는 ‘습담’과 현대의학이 경고하는 ‘장내 불균형’이 결국 같은 그림이라는 얘기다.

따뜻함과 균형―동서양의 교차점

한의학이 “속을 따뜻하게 하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현대의학으로 해석하면 소화 효소를 활성화하고 위장 혈류를 늘리라는 뜻이다. 뜨거운 국물이나 미지근한 물이 위장 점막의 혈류를 원활히 해 효소가 제대로 작동하게 돕는다. 반대로 냉기는 위 근육과 장 연동운동을 동시에 움츠러들게 해 가스 정체를 부추긴다. 장내 미생물 균형 역시 섬유소와 발효 식품, 규칙적인 수면과 스트레스 관리가 결정적이다.

생활 속에서 지키는 따뜻한 속과 조화로운 장

식탁 위에서 지나치게 차갑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줄이고, 제철 채소와 발효 식품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은 기본이다. 물론 물 섭취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평소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이라면 식사 때가 아닐 때 마시는 차가운 음료는 오히려 수분을 보충하고 장기적으로 소화액의 생성을 도와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체질과 상관없이 누구나 지키면 좋은 습관이 있다. 바로 식사 전후 30분 동안은 위장의 온도를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찬물 섭취를 피하는 것이다.
아침 공복에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시면 밤새 차분했던 비위를 서서히 깨울 수 있고, 짧은 산책이나 가벼운 스트레칭은 복부 혈류를 끌어올려 장 운동에 힘을 실어 준다.

보일러이자 화학 공장인 비위를 돌보는 습관

비위의 양기와 효소의 활약, 장내 미생물의 조화를 동시에 살릴 때, 우리는 더부룩함 대신 가벼운 몸과 기분 좋은 에너지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한의학과 현대의학이 손잡고 건네는 이 오래된 동시에 최신의 조언을 오늘부터 실천해 보자.
문의 (703)942-8858

<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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