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여행이 남미 여행의 양대 산맥이라 한다면, 칠레와 페루는 쌍두마차의 협주곡이다. 이 두 곳은 언제나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빚어낸 아름다운 하모니를 발견하는 여정이다.
페루에 도착하면 사이먼과 가펑클의 `엘 콘도 파사'가 잔잔히 귓가에 퍼진다. 반면 칠레는 마젤란해협의 장엄한 물결로 탐험가 마젤란의 용기를 떠올리게 했고, 끝없이 펼쳐진 안데스 산맥의 웅장함은 대자연 앞에 인간의 겸손함을 절로 자아내게 했다. 어느 여행이나 결국 인간과 자연을 만나고 발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태평양 연안의 이 두 나라는 대서양을 품고 유럽 대륙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이웃 사촌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발파라이소, 칠레를 대변하는 문화도시
칠레의 아름다운 해변도시 발파라이소 해변의 저녁풍경은 마치 고흐의 론강 화폭처럼 몽환적이다. 마치 시와 정치를 품은 곡선의 도시처럼 느껴졌다. 화려하게 꾸며진 골목 사이사이마다 시인의 숨결이 스며 있고, 벽면을 장식한 뮤럴들은 톡톡 튀는 멋과 지난 독재정권의 굴곡의 역사마저 새겨져 있다.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동안, 그가 사랑했던 칠레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이 도시는 수도도 아니건만 국회의사당이 이곳에 있다.
산과 바다와 호수의 나라
칠레 남부 호수 지역의 평화로운 풍경은 모든 이의 감성을 자극한다. 특히 만년설로 덮인 오소르노 산은 일본의 후지산을 능가하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만년설 위에서 즐기는 스키는 경이로움으로 엔도르핀을 폭발시킨다. 그 산 아래 고요히 자리한 호수들은 마치 자연이 그린 한 폭의 엉 플레네(en plein air) 미술 같다. 푸에르토 몬트와 메리모유 산(7,874피트)과 산 라파엘 빙하는 최대 볼거리다.
왜 서울에는 미국 이름을 딴 도로가 없는가?
현대적이면서도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수도 산티아고(성 타마스)는 역동적인 도시의 리듬 속에 여유로운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 안데스 산맥 품 안에 안긴 듯한 번화한 다운타운에서 느껴지는 활력과 활기가 넘치는 거리 문화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며, 현대 문명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완벽히 어우러져 있다. 특히 롯데타워를 연상시키는 남미 최고 층(64층)의 그란 토레 산티아고 건물 정상에 있는 야외전망대는 놀라운 파노라마를 선사한다. 1층부터 7층까지의 명품 쇼핑몰은 한인이라면 찾아야 하는 명소다. 이 건물은 아르헨티나 건축가 세자르 펠리가 설계했는데, 그의 대표작은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타워다.
펑 트인 존 에프 케네디 에브뉴:
그런데 다운타운 최대 거리 이름이 J.F. Kennedy 대로다. 길 양편으로 고급 호텔과 쇼핑몰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쇼핑몰에서는 한국산 화장품 상점들도 볼 수 있었다. 문득 한국이 미국과 최고의 우방이라 말하면서도 서울이나 워싱턴 어디에도 상대를 우대하며 기리는 도로명이 없다는 사실이 다소 섭섭하게 느껴졌다.
와인과 전설 그리고 찬바람
수도 산티아고에서 두 시간 운전하면 칠레 와이너리들이 또 다른 천국의 넥타를 선물한다. 싱싱하게 영근 포도 넝쿨 아래에서 맛보는 점심과 부드러운 카버네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면 이곳이 파라다이스가 아닐 수 없다. 알타 마타나를 넘는 길은 마치 삶의 굴곡을 연상케 하는 구불구불한 도로였으며, 곳곳에 보이는 긴 줄기 폭포들은 서로 프리마돈나임을 자평하며 여행의 지루함을 잊게 했다. 특히 산 정상에 위치한 포르티요 호텔 옆에 자리한 슬픈 전설을 품은 ‘잉카 호수’는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했다. 인당수가 심청이가 효녀였음을 증명했듯, 잉카 호수는 남녀 간의 이루지 못한 참사랑을 높고 깊은 산장 호수에서 찬 서리바람과 함께 우리에게 전하는데, 흰 구름들은 조선여인의 휜 치마폭 같이 산자락을 스치며 무심히 흘러간다.
칠레와 페루: 남과 북을 잇는 ‘팬 아메리카 하이웨이’ 를 달리다
칠레와 페루 여행 중 대륙의 끝과 끝을 이어주는 팬아메리카 하이웨이를 달렸다. 한편으로는 태평양, 또 한편으로는 거대한 산봉우리들이 첩첩산중 이다. 그 중간 중간 납과 구리 같은 광물을 캐는 탄광촌들이 즐비하고, 예전 쓰나미로 폐허가 된 공장들도 을씨년스럽게 방치되어 있다. 지나치는 곳곳에서는 시골 사람들의 누추한 모습과 낡은 옷을 기워 입고 신발 없이 튀어 다니는 어린아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
순간 영화와 소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떠올랐다. 대한민국이 처절한 전쟁을 치르고 있던 1952년, 23세의 젊은 아르헨티나 의과의사는 친구와 모터사이클 한 대를 타고 무작정 대륙 횡단 여행을 떠난다. 그가 달렸던 이 길 위를 내가 달리고 있다는 생각에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젊음과 순수함은 때로 매우 위험한 것이다. 그가 목격했던 칠레의 처참한 현실과 오늘의 남미는 무척 긍정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취케 카마타 구리 채굴광산과 생산 공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칠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구리 생산국이기도 하며 한국도 칠레에 많이 투자하고 있다. 이 지역은 구리의 황금보다 값비싼 대가를 자연에 청구하고 있다. 결국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어 살아갈 때 세상은 가장아름다워진다는 진리를 여행은 전한다. 자연의 웅장함 앞에서 겸허해지고, 문화의 깊이 앞에서 감탄하며, 인간의 욕망을 목격한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결국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제프 안: Jahn2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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