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일본 미쓰비시사가 라커펠러 센터를 매수하자 10월31일자 뉴욕타임스에 ‘일본이 뉴욕의 심장을 사다’는 톱기사가 올랐다. 또 소니사가 콜롬비아영화사를 인수하고 도요타,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제품이 세계를 뒤덮었다.
나도 1980년대 초 동경 출장을 갔을 때 시간이 나자 가장 먼저 간 곳이 전자제품의 메카인 아키하바라였다. 소니사가 1979년 7월1일 출시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을 사러간 것이다. 검정벽돌처럼 생긴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기기였지만 젊은이들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예고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부터 일본경제의 거품이 터졌고 미쓰비시는 라커펠러 센터를 비롯 대부분의 건물을 매각했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내려앉고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혹은 30년의 장기불황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경계삼아야 한다며 두 나라를 비유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첫째 저출산, 초고령화 문제로 생산력 약화를 가져온다. 일본도 그렇지만 한국의 세계 최저 출산율을 알고 있지 않은가.
둘째 일본은 디지털 혁명의 대처 미숙과 제조업 중심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은 IT 강국이지만 이념에 좌우되는 경제정책과 심각한 경제의 양극화는 어찌할 것인가. 혁신적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과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
셋째 일본 정부의 냉온탕 정책 남발이 좀비기업을 과감히 정리하지 못했다. 한국의 저성장세를 이겨내자면 과감한 구조개혁과 고속도로, 항만, 공항 등 공공재정정책 수용 등등 정치 리더십이 절실하다.
한국의 정치와 경제의 앞날이 어지럽다면 미국의 정치와 경제는 더 어지럽다.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오락가락하는 관세정책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보여주고 글로벌 투자자들이 미국 투자의 비중을 축소하고 있다.
대규모 관세 부과는 미국 국민들이 져야한다. 높은 관세가 적용되어 소비자에게 전가되면 생활물가가 올라간다. 수입업자가 수지타산이 안맞다고 한국산을 수입하지 않을 경우, 한국산 식품을 못먹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 동네 34애비뉴 세 블럭 안에 열 개가 넘는 가게가 문을 닫았다. 15년 전 이사올 때만 해도 앤틱샵, 99스토어, 헬스센터, 대형약국 체인점까지 비즈니스가 활기찼는데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주르르 문을 닫고 ‘렌트’ 사인이 붙었다.
최근,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철학이 각광받고 있다. 니체라면 난해한 내용으로 끝까지 읽기 힘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가 떠오른다. 그런데 요즘 팔리는 책 ‘니체가 세상에 남긴 66가지 인생지혜’는 어쩜 이 시대에도 잘 들어맞는지 감탄하게 된다.
니체는 당시의 기독교적 도덕이 지나치게 내세적 규율에 억매어있다고 비평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개인의 각성, 진리, 도덕임을 제창한다.
‘누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내가 너무 돈이 없어 가난하다면 일확천금을 꿈꾸어 도박에 빠지거나 헛된 생각을 한다. 노동없이 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사악한 행위 등에 손을 대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나라 경제가, 나의 살림이 어렵더라도 건강한 노동을 해야 한다. 이는 헛된 생각을 하지 않게 하고 사악한 일들로부터 우리를 멀리 둘 수 있게끔 돕는다.’
대체로 뉴욕 한인들은 건강한 노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주급을 받아서 부자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기본 생활을 할 뿐이다. 니체는 이 가난을 자랑하지 말라 했다.
‘가난을 자랑하는 인간 역시 어리석다. 자신의 가난을 적극적으로 주변에 알린다는 것은, 부자가 되는 것이 어렵고 그래서 자신이 부자가 아니라는 것은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나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자기 확신을 하는 순간, 조금이라도 남아있을지 모를 부자가 될 가능성이 비로소 말끔히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한국민이나 미국민이나 다 먹고살기 힘들다. 언제 나라가 여유 있고 나의 경제생활이 풍요로워질지 모르지만 결코 가난을 자랑하지 말자. 그저 없어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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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