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론 머스크의 초라한 성적표

2025-06-03 (화) 12:00:00 민경훈 논설위원
크게 작게
작년 선거에서 공화당 승리의 일등공신은 일론 머스크라는데 이견은 없다. 그는 세계 최고 부자답게 3억 달러라는 거액을 썼고 특히 미 대선을 좌우할 경합주중 가장 중요한 펜실베니아에서는 보수 가치를 지지하는 유권자에게 1백만 달러짜리 체크까지 주면서 투표율을 높이는데 열을 올렸다.

도널드 집권초 머스크의 위세가 하늘을 찔렀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도널드는 각료 회의에서 “일론에게 불만 있는 사람 있느냐”며 그에게 힘을 실어줬고 그에게 그에게 신설된 ‘정부 효율부’ 수장을 맡겨 연방 공무원 해임에 관해 사실상 전권을 줬다.

그러자 칼자루를 쥔 머스크는 관계 부처 장관들과 협의도 없이 대대적인 감원 바람에 나섰다.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해 항공 사고 위험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항공 통제국 직원을 자르는가 하면 도널드가 부흥을 약속한 석유 개발 승인에 필요한 내무부 직원을 해고했다 다시 고용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일부는 해고 권한이 없거나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아 소송이 벌어져 법원으로부터 해임 취소 판결을 받는등 혼란이 일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240만명의 연방 공무원 중 12%가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머스크의 칼바람에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부처가 연방 해외 개발국이다. 지난 60여년간 빈곤국 극빈자들을 돕는 일을 해왔던 이 기관은 인력의 99%가 삭감되면서 사실상 폐지됐다. 전문가들은 이로써 9천500만명이 기본적인 의료 혜택을, 2천300만명의 아동이 교육 기회를 잃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개발국 못지 않게 피해를 본 기관으로 ‘미국의 소리’ 방송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83년 간 48개 언어로 방송을 내보내며 러시아와 중국, 이란 같은 독재 국가 국민들에게 진실을 들려주던 이 방송은 인력의 99%를 잃고 기능이 마비됐다. 이들 나라 정부들은 우리가 수십년 동안 없애려 하던 것은 미국 정부가 해줬다며 앓던 이가 빠진듯 시원하다는 반응이다.

이렇게 해서 절약한 돈은 얼마나 될까. 머스크는 자신이 1천750억 달러를 아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자신이 애초에 정한 목표치 2조 달러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숫자일뿐 아니라 그나마 원래부터 줄이기로 한 프로그램, 중복 계산 등 문제가 많아 실제 액수는 이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리고 이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별 의미는 없다. 도널드 집권 4개월간 지출한 돈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0% 늘어났다. 이렇게 된 것은 연방 정부 예산의 70%가 소셜 시큐리티, 메디케어, 이자 등 고정 비용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연방 하원을 통과한 10년간 4조5천억 달러의 감세안은 같은 기간 연방 적자를 3조에서 4조 달러 늘릴 전망이다. 머스크가 도널드가 “크고 아름다운 법안”이라고 부른 이 안이 “적자를 줄이는 게 아니라 증가시킨다”고 비판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 머스크가 특수 공무원 신분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인 130일이 지나 ‘정부 효율부’ 수장직에서 지난 주 물러났다. 도널드는 백악관 문양이 새겨진 황금 열쇠를 주며 그의 노고를 치하했지만 둘 사이 관계는 더 이상 그다지 돈독해 보이지 않는다. 도널드는 그의 퇴임에 발맞춰 머스크가 밀던 자렛 아이잭먼의 NASA 국장 임명을 철회했다. 그가 과거 민주당을 지지했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머스크도 원래는 2008년에는 오바마, 2016년에는 힐러리, 2020년에는 바이든 등 민주당을 밀었고 2024년 대선을 앞두고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지지했던 인물이다. 그러다 도널드가 이길 것 같으니까 연방 정부 수주, 감독 완화 등을 보고 막판에 그쪽으로 돌아섰다. 자유 무역 신봉자이자 억만장자인 그는 전통적 MAGA 베이스와는 코드가 원래 맞지 않는다. 그는 관세 정책 입안자인 피터 나바로를 “벽돌 덩어리보다 멍청하다”고 불렀다.

그가 도널드의 오른 팔이 돼 권력을 휘두르는 동안 그의 비즈니스와 브랜드는 큰 타격을 입었다. 올 1/4분기 테슬라 순익은 71% 감소했으며 주가는 한 때 최고치에서 반토막 나기도 했다. 그나마 도널드가 채권가 폭락에 놀라 상호 관세를 유예하고 그가 회사로 복귀하기로 하면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불운은 계속되고 있다. 그가 꿈꾸던 화성 탐사 로켓 중 가장 큰 스타십이 지난 주 인도양에서 폭발했다. 이로써 스페이스 X는 세번째 로켓 연속 폭발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지난 주 머스크는 멍든 얼굴로 퇴임사를 발표했는데 그 모습은 지난 넉 달간 그가 겪은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민경훈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