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윌셔에서] 풋낯과 너나들이

2025-05-29 (목) 12:00:00 성민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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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예쁜 우리 말 소개에 ‘풋낯’과 ‘너나들이’란 단어가 뽑혔다. 뜻을 보니 ‘풋낯’은 서로 낯이나 익힐 정도로 앎, 또는 그 정도의 낯이라고 하고, ‘너나들이’는 너니 나니 하며 터놓고 지내는 사이라고 한다. 너나들이. 말이 재미있다. 이웃 간에 담을 터놓고 지내는 것처럼 마음의 담을 터놓고 지낸다는 뜻인가 보다. 담이 없으면 왕래와 소통이 쉬우므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배려도 많아지고 정도 쌓이고 사랑도 깊어진다. 집의 담을 터놓고 지내는 것도 이렇게 좋은데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면 얼마나 서로가 행복할까 싶다.

내 주위에 있는 인간관계를 한번 돌아본다. 얼굴을 떠올리니 너나들이는커녕 풋낯으로 지내는 사이가 더 많다. 무심한 천성 탓에 타인에 대한 관심이 도무지 없다. 마음의 용량이 작아 내 안에 보듬을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 뿐 아니다. 몇 번을 만난 사람도 낯 선 장소에서 만나면 못 알아본다. 혹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도 내 경험에 비춰 설마 저 분도 나를 기억하랴 싶어 인사를 못 한다. 그래서 나는 새 사람을 사귀기가 힘들다. 얼마 전에 우리 동네로 이사 온 친구를 보면서는 내가 얼마나 인간관계 맺기에 서툰지를 더욱 절실히 느낀다.

나는 35년 넘게 동네 터줏대감으로 살았지만 마켓에 가도 식당에 가도 모두가 낯 선 사람으로, 아는 척 해주는 주인이 없다. 그런데 이제 겨우 이사 온 지 넉 달 되는 친구는 어느 곳엘 가나 환대를 받는다. 그녀는 길거리 과일 장수 아저씨께도 팔꿈치 툭 치며 아들 잘 있냐는 인사를 한다. 춥지 않으세요? 머리 깎았네요. 그녀의 관심은 늘 살아서 톡톡 상대방의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반면 나는 언제나 처음 온 손님이다. 사람은 안 보이고 계산할 물건만 보인다. 계산기만 바라보고 서 있는 무신경의 나와 계산기 앞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친구. 이 사소한 차이가 수없이 들락거려도 단골 대접 못 받고 벌쭘하게 서 있는 나와, 반가운 환대에 덤까지 받는 친구를 만들었다. 차가 고장이 나서 바디샵을 가야했던 어느 날, 어디를 가야할 지 몰라 업소록을 뒤지는데 친구는 핸드폰을 누르더니 어서 오라는 밝은 음성의 주인이 있는 가게로 나를 데리고 갔다. 35년을 더 살았던 내가 오히려 넉 달 전에 이사 온 친구 손에 이끌려 다닌다. 북적북적 주위에 사람을 모으는 친구가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안부 한 마디를 나누는 그녀의 다정한 심성이 정말 사랑스럽다. 작은 관심이 얼마나 쉽게 관계의 싹을 틔우는지 친구를 보며 느낀다. 아무리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라도 관심과 배려가 없이는 너나들이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어느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일 당신이 사흘 뒤에 죽는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대답은 모두 자주 연락 못 드린 부모님을 찾아뵙는다. 가족과 여행을 하며 사랑을 나누겠다. 원수처럼 지내던 사람과 화해하며 사랑하겠다. 하나같이 더 많이 사랑하며 나누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말을 했다. 그 반응에 교수님은 칠판에 커다랗게 적었다. ‘Do It Now.’

<성민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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