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안보·경제 위협에 협력↑…정상들 “윈윈”, “새로운 장 열어”
▶ 英, EU 수출·무기조달 길 열려…EU, 조업권·청년 이동 얻어

기자회견 하는 EU·영국 정상들[로이터]
영국과 유럽연합(EU)이 19일(현지시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5년 만에 관계 재설정에 합의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런던에서 정상회담을 열어 이같이 합의했다.
스타머 총리는 "이제 앞을 바라볼 때다. 낡은 논쟁과 정쟁에서 벗어나 상식과 실용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합의가 영국과 EU에 '윈윈'(Win-Win)이며 "우리 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는 것이라고도 자평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우리는 한 페이지를 넘겨 새로운 장을 열고 있기에 엄청난 날"이라며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지는 시기라 중요하다. 우리는 생각이 비슷하고 가치를 공유한다"고 말했다.
이로써 영국이 2017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EU와 결별을 결정한 지 9년, 4년간 협상의 진통을 겪은 끝에 2020년 브렉시트를 발효한 지 5년 만에 양측의 관계가 중대한 변곡점을 맞게 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 장기화에 따른 지정학적 위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 등으로 유럽의 안보와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양측은 관계 강화를 도모해 왔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세계 불안정성의 시기에, 그리고 우리 대륙이 여러 세대 만의 최대 위협에 직면한 가운데 유럽의 우리는 함께해야 한다"며 "강한 EU-영국 관계는 우리의 안보, 번영, 공동의 운명에 근본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과 EU가 이날 서명한 파트너십은 안보·방위부터 식품, 조업권, 에너지, 이민까지 넓은 분야에 걸쳐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번 안보·방위 협정으로 EU가 1천500억 유로(약 240조원) 규모의 유럽 재무장 계획'에 영국이 동참할 길이 열리게 됐다. 이는 추가 협상을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
경제·무역 측면에선 영국이 조업권을 양보하고 농산물·식품 수출 절차 간소화를 받아냈다.
영국 정부는 이번 합의로 영국에 2040년까지 90억 파운드(16조7천억원) 가까운 경제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양측은 내년 만료되는 어업 협정을 2038년까지 연장, 상호 조업권을 12년 더 유지하기로 했다.
농축산·식품의 경우 다수 품목의 검역을 면제하는 등 검역·통관을 대폭 간소화하기로 했다. 브렉시트 후 복잡해진 절차로 급감한 영국산 식품류의 수출이 다시 활성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은 EU 어민의 영국 수역 내 조업권을 장기간 연장하는 것을 꺼려 4년 연장을 원했지만, 농산물 검역 완화와 에너지 협력을 위해 양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은 탄소 배출에 대해 긴밀히 협력하고 탄소 배출량 거래 시장을 연계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영국 기업은 내년 도입 예정인 EU 탄소세를 면하게 될 전망이다.
양측은 영국이 EU 역내의 거래 플랫폼을 비롯한 전력 시장에 참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또한 양측은 30세 이하 청년의 이주와 근로가 용이해지도록 상호 합의된 조건하에 균형 잡힌 청년 경험 프로그램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 EU의 학생 교류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 참여도 검토한다.
청년 이동성 문제는 이민 문제에 민감한 영국 여론 때문에 막판까지 첨예한 쟁점이 됐던 사안으로, 이번에 명확한 계획을 정하기보다는 양측이 세부안 합의에 노력한다는 수준에서 합의됐다.
영국인이 EU 국경에서 전자 자동 입국 심사대(e-gate)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이민과 관련해선 양측이 변칙적인 영국해협 횡단을 막기 위한 노력과 출신국 및 경유국과 협력할 필요성을 인식한다는 언급이 담겼다.
그러나 제1야당인 중도보수 보수당과 최근 세를 확장한 우익 포퓰리즘 성향 영국개혁당 등 야권에서는 청년 이동성과 조업권 연장 등을 비판했다.
케미 베이드녹 보수당 대표는 "아마추어같이 시작해서 완전한 배신으로 끝났다"며 "우리가 기회를 잡는 대로, 이 끔찍한 합의를 뒤집겠다"고 경고했다.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는 이번 합의에 대해 "비굴한 항복"이라며 "영국 어업의 종말"이라고 주장했다.
야권은 노동당 정부의 관계 재설정 시도는 EU에 굴복하는 것이자 브렉시트를 결정한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는 공세를 이어왔다.
영국 내 여론은 EU 재가입까지는 아니더라도 EU와 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지지하는 편이다.
지난 1월 유고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62%가 브렉시트가 실패에 가까웠다고 평가했고 11%만 성공에 가깝다고 답했다. EU나 단일시장 재가입 없이 더 근접한 관계를 원하는 응답자는 64%였다.
이달 17일 발표된 유고브 조사에서는 20년 안에 EU 재가입 가능성을 관측하는 사람이 39%로, 그럴 가능성이 작거나 없다는 응답률 40%와 비슷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