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학생들 여름방학 귀국 꺼린다

2025-05-05 (월) 12:00:00 한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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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비자 단속 강화 속 체류자격 박탈 잇따르자 항공권·여행 계획 취소

이번 여름방학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오랜만에 찾아뵐 계획이던 LA 지역 한인 유학생 박모씨는 최근 항공권을 취소했다. 미국 내 유학생들에 대한 비자 단속이 강화되며 출국 후 다시 미국에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또 플로리다로 친구들과 여행을 계획했던 한 남가주 한인 학생 조모씨도 여행 계획을 접었다. 혹시 모를 정부의 표적이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불법 이민자 차단과 반유대주의 척결을 등을 이유로 유학생 비자 단속을 강화하고 체류 자격을 박탈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전국적으로 이들 한인 유학생 사례처럼 유학생들이 여름방학 동안 여행이나 귀국을 주저하고 있다고 AP통신이 지난 3일 전했다. 학생들은 국제 여행은 물론, 국내 여행도 꺼려하고 있으며, 단순한 휴가 목적 뿐만아니라 연구나 학술 목적의 장거리 이동 계획도 재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지난 1일 홍콩 사우스차나이모닝포스트 등은 미국 내 대학 유학생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도 학생들이 미국행을 포기하고 자국 대학원으로 진로를 변경하거나 다른 나라 대학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는 전하기도 했다.


AP통신은 대학 성명, 학교 관계자와의 서신, 법원 기록을 자체 종합한 결과, 지난 3월 말 이후 미국 내 187개 대학 기관 소속 유학생 최소 1,220명의 비자가 취소되거나 합법 체류 자격이 박탈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AP는 이어 실제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지난달 10일자 보고서에 따르면 유학생 및 교환방문자 관리 시스템(SEVIS)에서 최소 4,736명이 유학생 신분이 종료됐다고 전했다. 4,736명의 사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트럼프 정부의 비자 단속 강화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에서 비자 박탈 사례들이 속출하기 전부터도 학생들과 교수진에게 여행 자제를 권고하고 있었는데, 최근 비자 취소 사례가 대규모로 드러나면서 더 많은 대학들이 유학생들에게 필수적이지 않은 해외 여행은 삼가라고 조언하고 있다.

비자가 취소된 학생들 중에는 사소한 규정 위반만 있었거나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이로 인해 추방 위험에 처한 학생들 중에는 숨어 지내거나 자발적으로 출국한 경우도 있다.

UC 버클리는 지난주 발표한 권고문에서 국제 여행은 ‘엄격한 심사와 단속’으로 인해 위험하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일부 학생들의 사례에 대해 적법절차 미비 문제를 제기되자 연방 정부는 비자 박탈 결정을 번복했지만, 곧바로 유학생의 체류 자격을 상실할 수 있는 사유를 확대하는 새 지침을 발표했다.

유학생 비자 취소 자체가 곧 체류 신분 종료 사유가 되도록 하는 새 지침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달 30일 유학생 비자취소 관련 소송을 맡고 있는 연방법원 애리조나지법에 제출한 문서에서 공개됐다. 해당 문서에는 “이민당국 직원은 필요에 따라 SEVIS에서 학생의 합법 체류 신분을 종료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며 “연방 국무부의 유학생 비자 취소도 유학생 체류 신분을 박탈할 수 있는 요건에 포함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이러한 빠른 변화 속에서 대학들은 급증한 유학생들의 문의에 대해 어떤 조언을 해야 할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AP통신은 한 이민 전문 변호사의 말을 이용해 유학생들이 여행이 정말로 필요한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전했다.

출국 후 재입국할 때는, 이민 서류, 성적 증명서, 만약 범죄 혐의가 있었던 경우 기각 결정이 명시된 법원 문서까지 지참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결국 공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SEVIS 통계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미국 내 한인 유학생은 총 4만7,928명으로 집계됐다.

<한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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