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춘추] 고운사, 고운 님 그리며

2025-05-02 (금) 12:00:00 김미선 서북미문인협회 회장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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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로 향하는 천년 숲길에는 송림의 향기가 가득했다. 등운산 자락에 고즈넉이 내려앉은 고운사에 다다르자, 마치 오래된 기도가 나를 기다리는 듯했다. 나는 개신교 신자이지만, 그곳에선 잠시 세상을 잊고 내 안의 속도를 내려놓았다.

그 고운사가 불탔다. 2025년 3월 25일, 의성 일대에서 시작된 산불로 수백 년을 지켜온 전각들이 무너져 내렸다.

고운사의 시작은 신라 시대, 68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의상대사가 창건해 높은 구름의 절이라는 ‘고운사(高雲寺)’라 불렸다. 훗날 당나라의 백대 시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유학자 최치원이 가운루와 우화루를 지은 후엔 그의 호를 따 외로운 구름 같은 절, 즉 ‘고운사(孤雲寺)’로 개칭하였다.


고운사는 단지 불전이나 전각의 가치로만 천년을 존재하지 않았다. 이 땅의 역사 속에서 묵묵히 제 몫을 해낸 곳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당이 승군의 병참기지로 삼았고, 3·1운동 당시에는 경북 지역 불교계 독립운동의 숨은 거점이 되었다. 겉으로는 조용한 산사의 절 집이었지만, 안으로는 살아 움직이는 민족의 의지가 뜨겁게 고동쳤다.

고운 최치원은 지금도 중국 역사학계에서 당나라의 문학과 정치를 연구할 때 참고한다는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을 남겼다. 그중 제20권, 시를 모은 부분에 놀랍게도 ‘불’을 주제로 한 시 〈야소(野燒)>가 있다.

猛焰燎空欺落日

狂煙遮野截歸雲

맹렬한 (들)불이 하늘을 덮어 지는 해를 가리고

광기 어린 연기가 들판을 삼켜 돌아서려는 구름마저 가로막는다.

그는 이 시에서 “소와 말을 방목하지 못한다고 탓할 것이 아니라, 여우와 승냥이 무리를 없앰을 기뻐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곧 경고한다. 바람이 불길을 산으로 몰아가면, 옥과 돌, 선과 악, 귀한 것과 하찮은 것조차 구분 없이 모두 태워버릴지도 모른다고 (虛敎玉石一時焚).


최치원은 불길을 단순한 재앙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악을 소멸시키는 정화의 힘과, 귀한 것까지 태워버릴 수 있는 파괴의 위험을 동시에 바라본다. 이번 재해로 전각은 사라졌지만, 그의 염려처럼 그곳에 깃든 정신까지 함께 타버린 것은 아니길 바란다. 불타고 무너진 자리에도 남아 있는 뜻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잃지 않는 일?그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당나라에서 화려한 관직과 부귀영화를 뒤로한 채 귀국한 최치원은, 혼란에 빠진 통일신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제안한다. 사회개혁안과 함께, 우리 고유의 풍류사상을 일깨우고자 했다. 그가 보여준 방향과 태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지금, 정보가 윤리를 앞서고 관계보다 결과가 중시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안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중심을 굳건히 지키는 일이다. 이는 우리 각자에게 던져진 질문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품고,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는가. 고운사가 지켜온 정신은, 오늘 우리가 리더를 선택할 때도 되새겨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앞으로 있을 고운사의 재건이 단지 건물의 복원이 아닌, 공동체의 품격과 역사 감각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천 년의 절이 남긴 뜻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불타버린 절터 위에 남은 기록과 전승, 그리고 함께한 고운 님의 기억이, 그 뜻을 이어줄 것이라 믿는다.

<김미선 서북미문인협회 회장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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