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세전쟁 혼돈 속 일거수일투족에 이목 집중… “외교 무대로 변모”
▶ 검정 정장 사이 맨앞줄 ‘선명한 파랑’… “의도된 표출”

26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진행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미사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각국 정상들.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바티칸을 방문한 14시간 동안 세계 이목을 집중시키는 특유의 돌발 행보를 이어가면서 사실상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 미사의 빛을 바래게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렇게 많은 세계 지도자가 한 자리에 모이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엄숙한 찬사는 빛을 잃었다. 성 베드로 광장은 중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외교의 중심지가 됐다"고 26일(현지시간)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대립 관계였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에 참석하기로 21일 전격 발표한 이후 이날 장례 미사가 마무리되기까지 바티칸은 '외교 무대'로 변했다는 게 폴리티코 진단이다.
각국 정상은 장례 미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할 기회를 마련하고자 물밑에서 총력을 쏟아부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신이 담긴 관이 운구되는 동안에도 취재진의 시선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는 것이다.
일부 취재진은 고배율 망원경을 동원, 트럼프 대통령이 혹시라도 동맹국이나 적대국 정상들과 마주치거나 대화를 주고받지 않는지 촉각을 세웠다.
이처럼 얽히고 설킨 외교전이 벌어지게 된 것은 트럼프발 변수가 세계 정세를 전방위로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사실상 모든 무역상대국에 최소 10%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데 이어 90일간 시행을 유예하고 협상의 문을 열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멈추고 휴전에 합의하도록 압박을 가하고 있기도 하다.
정상 간 담판을 통한 '톱다운 (Top Down·하향식) 협상'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만나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는 의미다.
이날 바티칸에서는 곳곳에서 만남이 이뤄졌다.
장례 미사가 시작되기 전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성베드로 대성당 한복판에서 독대해 즉석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에 대해 잠재적으로 '역사적'인 회담이 이뤄졌다면서 '믿음직스럽고 항구적인 평화'를 위한 길이 닦였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도 악수를 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고, 대변인은 별도의 게시물을 통해 두 정상이 "만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악수한 뒤 짧은 담소를 나눴고 옆자리에 앉은 에스토니아, 핀란드 정상과도 가볍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도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등을 만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장례미사가 끝나자마자 곧장 로마를 떠나면서 14시간 만에 귀국길에 올랐다. 별도의 만남을 원했던 정상 대다수가 빈손으로 귀국길에 올라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새 대통령의 첫 해외방문치고는 놀랄 정도로 빠른 복귀였고, 이는 (유럽 정상들에게) 유럽연합(EU)에 (트럼프가) 부과한 관세와 관련한 논의를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장례 예절에서 벗어나 성조기 모양 배지가 달린 파란색 정장을 입은 것에도 일종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NYT는 "외양이 지니는 힘을 매우 잘 아는 트럼프 같은 인물에게 이런 정장 선택은 우연이 아닐 것"이라면서 이는 "즉각적으로 눈에 띄도록 하는 동시에 자신이 아닌 누구의 규칙도 따르지 않겠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지와 완벽히 부합하는 듯 보였다"고 말했다.
교황의 장례식에서조차 국제관계에 있어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뜻을 보이는 걸 우선시했을 것이란 이야기다. 트럼프 대통령과 대조적으로 멜라니아 여사는 검은색 치마와 구두 차림으로 장례미사에 참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