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단상] 아리랑의 메아리
2025-04-18 (금) 12:00:00
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
언제 들어도 귀가 쭝긋이 세워지는 노래가 있다. 아리랑이다. 특히 이민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반가움은 더하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도 이 노래를 들으면 마치 고향의 따뜻한 품에 안긴 듯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애틋한 아쉬움이 마음을 감싸기도 했었다. 아리랑은 2012년에 유네스코 대한민국의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자산이 되었다.
오리건주의 도시인 유진에서 한국전 참전 용사분들과 전쟁고아 입양 가족을 초청하여 매년 감사 음악회를 개최해 온 지도 어언 삼십년이 다가온다. 이 음악회에서 불러온 노래 중에는 한국 민요들도 있었다. 특히 아리랑은 우리들에게도 친근한 민요이지만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노래다. 합창단원들이 노래를 부를 때 청중석에 앉은 참전용사들이 함께 흥얼거리며 장단 맞추는 모습을 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서 치열한 전투를 겪은 노 군인답지 않게 입속으로 아리랑을 흥얼거리는 모습은 천진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아리랑이라는 말이 참전용사들에게는 한국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말로 들리는 것 같았다. 이 단어는 한국과 미국 사이를 가르고 있는 넓은 태평양 바다를 이어주는 다리와 같았다. 나아가 한국과 세계를 이어주는 교량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아름다운 음악당이다. 미국의 카네기홀,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극장과 함께 세계 3대 오페라하우스 중 하나로 꼽히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몇 차례의 아리랑 공연이 개최되었다. 우리 민족이 겪은 애환을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에게도 아리랑이 주는 깊은 감동은 문화의 위대한 힘을 보여준다. 차이코프스키나 멘델스존과 같은 위대한 서양의 악성들의 곡이 주는 감동 못지않게 우리 고유의 민요 아리랑이 외국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영국 왕립 음악원을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한 바이올린연주자 제임스 하워드는 이 오페라 하우스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20년 이상의 경력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차이 포스 키의 협주곡 등을 연주하여 큰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는 이 오페라 하우스에서 개최된 ‘한국전쟁 기념 평화 콘서트’가 개최된 음악회에 아리랑을 연주하도록 부탁을 받았다.
한국 음악에 관하여 별로 관심이 없었던 그는 생소한 민요 아리랑의 가락이 낯설었다. 그렇지만 고민 끝에 그는 이 음악회에 합류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나 음악적인 기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한국인의 애환을 그의 바이올린으로 담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아리랑 곡을 연습하면서 음률로 표현할 수 없는 한국인의 정서를 느끼기 시작했다.
음악회의 거의 마지막 순서에 그의 손에는 바이올린이 쥐어져 있었다. 청중 중에는 호주의 한국전 참전 용사들도 눈에 띄었다. 그가 아리랑을 연주할 때 어떤 이들은 한국말로 아리랑을 따라 부르기도 하였다. 어떤 용사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70년이 지났지만 아리랑은 바다 건너 시드니의 음악당에서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하워드는 그동안 자기 바이올린을 다루는 기교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리랑을 연주하면서 음악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완벽한 연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속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야말로 참된 감동을 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오는 여름에 오리건주에서 개최할 한국전 참전용사 가족 및 입양 가족 초청 음악회에서도 아리랑 민요를 함께 부를 계획이다. 6.25 사변이 지난 지도 일흔 다섯해가 되었다. 그러나 그 메아리는 지금도 태평양을 조용히 건너와 귓전을 맴돌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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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