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낙농업의 수도’로 불리는 위스콘신은 인구 600만의 아담한 주지만 미 역사상 그 중요성은 작지 않다. 1854년 3월 20일 노예제에 반대하는 수십명의 시민들이 이곳 리펀의 한 학교에 모여 새로운 정당 창당을 촉구했고 그 결과 공화당이 탄생했다. 이 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노예제를 폐지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공화당은 리펀을 당의 출생지로 기록하고 있다.
이곳의 중요성은 현재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 번 대선에서 공화당은 경합주 중 가장 적은 0.9% 포인트로 이곳에서 이겨 승리를 차지했다. 2016년 대선도, 2020년 대선도 이곳에서 이긴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 가히 미국의 정치 풍향계라 할만 하다.
바로 그 위스콘신에서 지난 주 정치적 드라마가 벌어졌다. 위스콘신 주 대법원의 정치 성향을 좌우할 대법관 선거에서 민주당의 수전 크로포드가 공화당의 브래드 쉬멜을 10% 포인트 차로 꺾고 승리를 거뒀다. 위스콘신에서 이 정도 차면 압승이라 할만 하다. 대법원을 누가 차지하느냐는 선거구 조정과 직결돼 있어 양당의 연방 하원 의석수에도 영향을 준다.
이런 이유로 일론 머스크는 개인적으로 2천만 달러를 쏟아부으면서 이번 선거 결과가 미국뿐만 아니라 서구 문명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허풍을 떨었다. 그러나 아주 허풍도 아닌 것이 위스콘신이 정치 풍향계로서의 역할을 정확히 수행한다면 이는 향후 미국 정치의 방향을 보여주며 미국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세계사의 앞날도 바뀔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 들어간 비용은 총 1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대법관 선거 사상 최대 금액이다. 공화 민주 양당이 이번 선거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아이오와와 펜실베니아 주의회 선거에 이은 이번 대법관 선거 승리로 한동안 주눅이 들어 있던 민주당에 활기가 돌고 있다. 작은 촛불 하나는 켜진 셈이다.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도널드는 일반 관세와 상호 관세 등 사상 최대 규모의 관세안을 발표하며 이 날을 ‘해방의 날’로 불렀다. 이로 인해 무역 전쟁이 본격화하고 불황과 인플레가 재발할 우려가 커지면서 미 주식 시장은 이틀 사이 6조 달러가 증발했다.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최악의 폭락이다.
지난 대선에서 도널드를 찍은 투자가들은 지금 별로 즐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태는 도널드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다른 건 몰라도 관세에 관한한 도널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 관세 인간”이라고 부르고 “관세는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대대적인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인들의 불안과 함께 도널드 경제 정책에 대한 불만이 커가고 있다. 이것이 공화당의 정치적 패배로 이어질 경우 지난 2일은 미국인들이 도널드의 어리석은 경제 정책으로부터 해방되는 시작의 날일 수 있다.
공화당 일각에서도 이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켄터키 출신 연방 상원의원인 랜드 폴은 “관세는 정치적 파탄으로 이어졌다”며 “맥킨리가 1890년 관세를 올리자 다음 선거에서 의석 50%를 날렸고 (스무트와 홀리)가 1930년대 관세를 올리자 우리는 향후 60년간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잃었다”고 말했다. 폴과 3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민주당과 합세해 캐나다에 부과한 관세를 철회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도널드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의 하나인 테드 크루즈 연방 상원의원도 보복 관세와 함께 무역 전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끔찍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도널드 충성파인 척 그래슬리 연방 상원의원은 대통령으로 하여금 관세 부과 48시간 전에 의회에 이 사실을 통고하고 의회가 60일내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 자동 폐기하도록 하는 법안을 상정했다.
지난 수십년간 외국이 미국을 착취했다는 도널드의 주장과 달리 1960년 2천700억 달러 규모였던 미국 경제는 2023년 27조 달러로 명목상은 100배, 인플레를 감안한 실질 성장은 10배를 기록했고 미국인 1인당 실질 GDP는 1만9천 달러에서 6만3천 달러로 3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나 이런 사실과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도널드가 관세 부과를 취소할 지는 의문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관세가 상대 교역국의 무역 장벽을 낮추기 위한 수단이라고 아직도 믿고 있지만 관세야 말로 도널드가 일관되게 신봉한 종교 같은 것이어서 그리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경험이란 학교는 비싼 수업료를 요구하지만 바보는 다른 곳에서는 배우려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미국민들은 당분간 비싼 수업료를 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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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