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헌재 전원일치 尹 파면… “국민신임 배반한 용납불가 중대위법”

2025-04-03 (목) 07:26:37
크게 작게

▶ 5개 탄핵소추 사유 전부 수긍… ‘정치인 체포·의원 끌어내기’ 사실로 인정

▶ 尹측 제기한 절차쟁점 안 받아들여… “내란죄 철회 문제 없다, 탄핵소추는 적법”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을 4일(이하 한국시간) 파면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11시 22분께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탄핵심판 선고 주문을 읽었다. 이를 기점으로 파면의 효력이 즉시 발생해 윤 대통령은 직위를 잃었다.

헌재는 "피청구인(윤 대통령)은 군경을 동원해 국회 등 헌법기관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해 헌법 수호의 의무를 저버렸다"며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라고 했다.


이어 "피청구인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며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 이익이 파면에 따른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 5개를 모두 인정했으며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위헌·위법이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윤 전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때로부터 122일만, 지난해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접수된 때로부터 111일 만이다.

헌재는 이날 오전 11시 대심판정에서 탄핵심판 선고를 열고 국회의 탄핵소추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했다.

반대 의견을 남긴 재판관은 없었고 일부 재판관들이 결론에 동의하면서 세부 쟁점에 대해 이유를 보완하는 보충의견을 덧붙였다.

헌재는 작년 12월 3일 당시 국가비상사태가 아니었는데도 윤 전 대통령이 헌법상 요건을 어겨 불법으로 계엄을 선포했다고 봤다.

헌재는 이른바 '줄 탄핵', 예산안 삭감과 관련해 "국회의 권한 행사가 위법·부당하더라도 헌재의 탄핵심판, 피청구인의 법률안 재의요구 등 평상시 권력행사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으므로 국가긴급권의 행사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경고성·호소용 계엄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 주장에 대해서는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며 "중대한 위기 상황을 병력으로써 극복하는 것이 비상계엄의 본질이므로 그 선포는 단순한 경고에 그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헌재는 계엄의 배경으로 언급된 '부정선거론'도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혹이 있다는 것만으로 중대한 위기 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계엄 선포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봤다.

계엄 선포 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실질적 심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국회 통고 절차도 이행하지 않았으므로 윤 전 대통령이 절차적 요건도 위반했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헌재는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령 1호'에 대해서도 "국회·지방의회·정당의 활동을 금지함으로써 국회에 계엄 해제 요구권을 부여한 헌법 조항, 정당제도를 규정한 헌법 조항과 대의민주주의, 권력분립원칙 등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윤 전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에 모인 의원들을 끌어내 계엄 해제 의결을 방해하려 했다는 의혹도 사실로 인정됐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육군특수전사령관 등에게 '의결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으니,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는 등의 지시를 했다"고 판단했다.

계엄 선포 당시 주요 정치인·법조인 등의 위치를 확인하려 시도했다는 점도 사실로 인정됐다.

헌재는 "국방부 장관은 필요시 체포할 목적으로 국군방첩사령관에게 국회의장, 각 정당 대표 등 14명의 위치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며 "피청구인은 국가정보원 1차장에게 전화해 국군방첩사령부를 지원하라고 했고, 국군방첩사령관은 국정원 1차장에게 위 사람들에 대한 위치 확인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위치 확인을 시도한) 대상에는 퇴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 대법원장 및 전 대법관도 포함돼 있었다"며 "이는 현직 법관들로 하여금 언제든지 행정부에 의한 체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압력을 받게 하므로,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지시의 직접적인 주체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인정됐지만, 헌재는 결정문에 "(피청구인은) 정당의 활동을 제약할 의도로 주요 정치인에 대한 필요시 체포할 목적의 위치 확인 지시에 관여했다"며 "김용현의 지시가 피청구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명시했다.

탄핵심판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 측이 신빙성을 적극적으로 공격했던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과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의 진술도 모두 사실로 인정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부당하게 압수수색해 헌법을 어겼다는 소추사유도 인정됐다. 윤 전 대통령은 적법한 계엄 사무였고 선거 시스템을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고 주장했는데, 헌재는 당시 선관위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으므로 계엄사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 같은 윤 전 대통령의 헌법·법률 위반에 대해 헌재는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며 "민주주의에 헤아릴 수 없는 해악을 가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 측에서 제기한 절차적 쟁점에 대해서는 어느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른바 '내란죄 철회' 논란에 대해서는 탄핵소추 사유의 변경으로 볼 수 없으며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국회 법사위 조사를 거치지 않거나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반해 탄핵소추 자체가 무효라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복형·조한창 재판관은 앞으로의 탄핵심판에서는 증거와 관련해 전문법칙(경험한 사람의 진술이 직접 법정에 제출돼야 한다는 원칙)을 보다 엄격히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이미선·김형두 재판관은 전문법칙을 완화할 수 있다는 취지의 보충의견을 냈다.

정형식 재판관은 회기가 달라지더라도 같은 내용의 탄핵소추안 발의 횟수를 제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헌재는 작년 12월 14일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접수한 뒤 지난 2월 25일까지 11차례 변론을 진행했다. 이후 한 달 넘게 평의를 거듭한 끝에 이날 선고를 마쳤다.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은 전체 심리 기간과 변론종결 후 평의 기간 모두 대통령 사건 중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윤 전 대통령은 오후 1시 50분께 대리인단을 통해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짤막한 입장을 냈다.

윤 전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선고 이후 취재진에 "법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국회 탄핵 소추위원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헌법의 적을 헌법으로 물리쳐준 헌재의 현명한 역사적 판결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우리나라 국가수반의 상징으로 용산 대통령실 청사 정문 게양대에 걸렸던 봉황기는 이날 오전 11시40분께 깃대에서 내려왔다.

<연합뉴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