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리에 유난히 민감하다. 작은 소음도 크게 증폭되어 귀청을 울린다. TV 소리는 들릴 듯 말듯 작게 해 놓는다. 잘 들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똑딱거리며 가는 시계 소리도 듣고 있으면 심장을 조이는 듯하여서 되도록 피하려 한다.
요즈음 짜증이 부쩍 많이 난다. 집 앞 도로 공사를 하느라 울리는 기계소음 때문이다. 시계 소리도 그러한데 하물며 창문까지 울리는 기계소음이라니. 아스팔트를 깨고 철판을 덮는 소리로 요란하다. 하필이면 이른 아침부터 우리 집 앞 도로를 파고 있다. 집 안에 있어도 길바닥에 나와 앉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피난 가는 심정으로 지인을 만나러 식당에 갔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 목소리가 유난히 컸다. 이웃집과 불편해진 관계를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듣고 싶지 않은 내용이 너무 잘 들리니 피난 나온 이유가 무색해졌다. 밥을 대충 먹고 일어났다.
돌아오는 길에 운동하러 갔다. 열심히 해도 근육이 기대만큼 생기지 않아 조바심이 난다. 마음이 급해져서 강도를 높였다. 무게를 많이 늘리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다리가 불편하더니 통증이 오래갔다. 약을 처방받고 주사도 맞았다. 아픈 다리를 끌다가 턱에 걸려 넘어지기까지 했다. 예민해진 탓인지 집을 나서면 짜증이 그림자처럼 따라오고 문을 닫으면 틈새를 비집고라도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버튼만 누르면 튀어 오를 것 같은 짜증이 곳곳에 함정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어느 작가는 학생들에게 글쓰기 수업에서 짜증 난다는 표현은 쓰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짜증 나는 감정을 좀 더 섬세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라고 주문했다. 짜증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감정이 뭉뚱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화가 나거나, 서운하거나, 당황스럽거나, 황당함 등의 감정을 세분화해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가의 가르침에 따라 나의 짜증은 구체적으로 무슨 감정인지 생각해 보았다. 공사 소음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옆 테이블의 떠들썩한 소란에 화가 났다. 문턱에 결려 넘어진 나의 부주의함 때문에 마음이 심란했다. 각각의 감정이 다르게 구분되어 졌다. 짜증으로 꾹꾹 눌려 있을 때보다 감정을 잘게 나누어보니 무게가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다.
동치미가 맛있게 되지 않아 아쉽다. 김치를 담아놓고 냉장고에 넣을 시기를 놓친 탓이다. 네 병이나 되는 것을 어찌할까. 김치찌개도 못 해 먹는 동치미는 활용할 방법이 없다. 미련 없이 버리고 다시 해야 한다. 네 병이 잘못되었는데 다섯 병째 잘못된다고 무슨 대수란 말인가. 한 번 더 망하면 되지, 그 깨달음을 얻게 하려고 그토록 짜증 나는 상황의 연속이었던 것일까. 한 번 더 망하겠다고 작정하니 걱정되는 일도 짜증 낼 일도 없다.
결국 짜증을 내지 않는 방법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순간 치솟는 기분에 휘둘리지 말고, 조바심내지 말고, 마음의 균형을 잡는 일임을 일깨워 준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알아보려 마음 쓰는 것도 다 내 감정을 살피고 헤아리려 애쓰는 일이다. 한 걸음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다정하고 친절하게 다가가는 길이다. 짜증이 다른 단어로 채워진다면 행복한 순간이 훨씬 많아질 것 같은 예감이다.
봄바람이 분다. 들판이 야생화 물결로 출렁인다. 따스한 바람에 까칠했던 마음이 조금 말랑해진다.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받치어 무엇하나” 태평가 한 가닥 부르며 머리에 꽃 달고 나가기 더없이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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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실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