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피소 생활 장기화, 고충 호소
▶ 컵라면·생수 등은 넘치는데 점퍼·속옷 등은 공급 부족
가방에 남은 여성용품이 있긴 한데...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돼요.
안모(26·경북 청송군 파천면)씨
28일 청송군민센터 대피소에서 만난 안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흘 전 집 앞 산까지 들이닥친 불길에 가족과 함께 급히 대피한 그는 옷가지 하나 챙기지 못한 채 몸만 겨우 빠져나왔다. 대피소에서 나눠준 보급용 옷차림의 안씨는 대피할 때 입었던 옷을 빨고 싶지만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빨래를 말릴 공간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화마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의 대피소 생활이 길어지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대다수가 텐트도 없이 돗자리 위에서 머무는 데다 컵라면 같은 비상식량은 충분한 반면 휴지나 여성용품 등 생필품은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대피소로 쓰이는 영양군민회관은 5, 6인용 텐트 14개가 오른편에 두 줄로 배치돼 있고, 왼편에는 길게 돗자리가 깔려 있다. 텐트는 90세 이상 고령자나 아이(약자)를 둔 가정에 우선 배분돼 대부분 이재민은 나흘째 돗자리 생활을 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생필품 부족이다. 지방자치단체 재해구호기금으로 이재민들에게 옷가지, 수건, 베개 등이 담긴 구호 박스를 전달하고 있지만 대피소마다 보급 사정은 천차만별이다. 120여 명이 머무는 청송군민센터의 경우 컵라면 박스는 바깥 공터까지 쌓여 있는 반면 휴지나 물티슈 등은 7, 8박스에 불과했다. 청송군청 관계자는 “생수, 과자 등은 중복으로 들어오는데 이재민들이 많이 찾는 점퍼나 속옷은 모자란 실정”이라고 했다. 안동 길안중학교 대피소에서 만난 이재민 김모(60)씨도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옷가지, 마스크, 여성용품 같은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날씨가 부쩍 쌀쌀해져 추위를 느끼는 이재민도 많다. 전날 최고 27도, 최저 9도였던 청송 기온은 하루 사이에 최고 11도, 최저 5도까지 떨어졌다. 청송군민체육센터의 한 이재민은 두꺼운 플리스 재질 옷을 가리키며 봉사자를 향해 “왜 저긴 옷 주고 난 안 줘요. 저 욕심부리는 거 아닌데...”라고 호소했다. 영양군민회관 이재민 60대 신모씨도 “돗자리만 깐 바닥에 이불만 덮고 잤더니 새어들어온 칼바람에 감기가 들었다”며 코를 훌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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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