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가 쏘아올린 미국판 문화혁명

2025-03-26 (수) 12:00:00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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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제적 지배력이 고등교육만큼 완벽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없다. 세계 인구의 4%, 지구촌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는 미국은 세계 25대 명문대학 가운데 72%를 품고 있다. 별도의 글로벌 명문대 랭킹에도 미국 대학이 64%의 점유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처럼 우세한 고등교육의 경쟁력은 트럼프 행정부가 벌이는 ‘대학과의 전쟁’으로 점차 약화되고 있다.

J.D. 밴스는 지난 2021년에 열린 전국보수주의총회(NCC)에서 “우리는 정직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이 나라의 대학을 공격해야 한다… 교수들은 (보수의) 적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 행정부는 그의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가장 극적인 공격은 연방정부가 제공하는 막대한 연구 보조금과 대출을 동결하거나 대폭 삭감하는 ‘돈줄 죄기’ 방식으로 전개됐다. 이러한 조치들 가운데 일부에 대해서는 법원이 합법성 여부를 검토중이지만 누적된 기초연구비 삭감액만 수십억 달러에 달해 연속성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와 프로그램의 상당 부분이 차질을 빚었다.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양질의 연구는 독특한 생태계를 바탕에 깔고 있다. 연방 정부는 국립보건원(NIH)과 국립과학재단(NSF) 같은 유수한 기관을 통해 연구 자금의 상당부분을 제공한다. 나머지 연방 지원금은 민간 재단과 기업에 돌아간다. 공립과 사립대학의 교수들은 연방정부가 제공한 기금을 사용해 연구를 진행한다. 이런 시스템이 미국만큼 원활하게 작동되는 나라는 없다. 사이언스지 계열에 속한 과학 저널의 편집장 홀든 도프는 지금 위기에 처한 것은 “지난 80년간 미국의 과학연구 프로젝트를 가능케 하기 위해 연방정부와 여러 기관이 체결한 사회적 계약”이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NIH로부터 받은 보조금 총액을 기준으로 전국 대학 가운데 11위에 랭크된 듀크대를 예로 들어보자. AP통신에 따르면 13억3,000만 달러에 달하는 듀크대 연구 예산 가운데 8억6,300만 달러는 연방정부에서 나왔다. 연방보조금은 암을 비롯한 주요 질환 연구 프로젝트와 박사과정 학생 630여 명에 대한 지원금을 포함한다. 따라서 연구 예산이 삭감되면 주요질환 연구 프로젝트와 의대 박사과정 학생들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또한 존스홉킨스 대학은 8억 달러의 연방 보조금 중단에 따라 2,000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연방 보조금 삭감은 고정경비에 대대적인 칼질을 가하는 직접적인 방식, 혹은 정부가 지불하는 대학 연구비 상환액을 대폭 축소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고정경비는 정부 보조금의 40~50%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지난달 NIH는 이를 15% 아래로 낮추라고 지시했다. NIH의 결정은 합리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각 대학은 과학 보조금을 (교수와 대학원생의 봉급 등) 연구비용과 (건물, 실험실, 에너지와 유틸리티 사용료 및 행정직원 임금 등) 고정비용으로 분리한다. 연구를 수행할 복잡한 실험실을 짓는 경우 구조물을 건립하고 기구를 장만하는데 드는 비용은 연구원들에 지불되는 봉급과 배당금을 합친 것보다 많다. 미시간 주립대학은 고정비용에 투입되는 연방 정부 보조금 축소로 인해 암, 심혈관 질환과 신경과학 연구를 위해 신축중이던 3억3,000만 달러짜리 시설물 공사를 중단해야 할지 모른다고 발표했다.

정부 보조금은 독특한 역할을 수행한다. 기업들이 꺼리는 기초연구 지원에 보조금이 자주 투입되지만 연구 성과는 특정한 회사가 아니라 과학 및 첨단기술을 다루는 커뮤니티 전체에 무료로 제공된다. 기업과 단체 모두가 연구 결과를 자체적인 실험과 혁신에 응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인체 유전자 지도인 게놈 작성에 13년간 30억 달러가 투입됐는데 완성된 지도는 곧바로 일반에 공개됐다. 연방 지원금을 받는 프로젝트의 경우 확증된 연구결과를 24시간 이내에 공표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가 내건 핵심 요구사항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연방 보조금에 이어 대학을 겨냥한 정부의 새로운 공격 대상은 표현의 자유다. 이같은 공격은 관료층, 대학과 엘리트들 모두가 사회적 불평등에 지나치게 의식화됐다는 원칙적인 비평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를 연상시킨다. 정부는 이들 대학의 프로그램을 샅샅이 뒤져 ‘다양성’이나 ‘정체성’ 혹은 ‘포용’이라는 단어를 검색했고 적발된 프로그램은 추가 검토를 거치지 않은 채 폐기했다.

더 고약스런 일은 대학 캠퍼스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주제로 특정한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들을 방치한다는 이유로 정부가 해당 대학을 벌준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지금은 시위자들까지 처벌한다. 필자는 오랫동안 대학에 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우선 지적, 이념적 다양성이 지나치게 부족하다. 이들은 첫손가락에 꼽혀야 할 가장 중요한 종류의 다양성이다. 그러나 극렬 좌익 연설을 제한하는 것은 이 문제를 바로잡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그보다는 광범위한 이념적 스펙트럼의 다른 부분에서 나오는 목소리와 견해를 추가해야 한다. 우파의 검열은 좌파의 검열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학계에 퍼붓는 분노는 중국 문화혁명의 초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편집증에 사로잡힌 마오쩌둥은 중국의 기존 대학을 박살냈고, 이 광기는 여러 세대가 지난 후에야 치유됐다. 한편 지난주 중국 정부는 21세기에 과학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기 위해 연구 및 기술개발 보조금을 대폭 늘리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미국이 중국 최근 역사에서 최악의 측면을 따라하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중국은 미국의 가장 좋은 측면을 모방하면서 미국이 자체적인 문화혁명을 거치는 사이에 자국의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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