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J.D. 밴스와 MAGA의 유명인사들은 서구가 직면한 위험은 유럽에서 진행중인 ‘문명 말살’이라고 주장한다. 유럽이 오도된 정체성과 위험스런 이민정책을 통해 서구의 독특한 유산을 파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서구를 정의하는 특징은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아볼 수 있는 부족이나 종교적 연대감이 아니다. 서구의 귀중하고 거의 유일무이한 성취는 국가권력의 제한이다. 1215년에 나온 마그나 카르타 이래, 서구는 시민의 권리, 독립적인 사법부와 주권적인 교회 및 사유재산의 신성함을 통해 통치자들의 권력을 점진적으로 제한했다. 이런 유산이 서구를 민주적이고 번영하는 사회로 만들었다. 또한 바로 이 유산 덕분에 서구는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다. 권력이 법에 의해 제한됐기 때문에 시민들은 자유로이 반대의견을 낼 수 있었고, 기업들은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었으며, 시민사회는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반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같은 전통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미니애폴리스에서는 수정헌법 1조에 명시된 권리를 행사하던 두 명의 시민이 연방요원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미니애폴리스와 기타 지역에서 연방 요원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기관명이 표시되지 않은 차량을 타고 다니며, 법원이 발부한 영장조차 없이 마구잡이 체포를 자행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과 몸으로 체감하는 현실은 권위주의적인 경찰력 행사와 제한받지 않는 국가 권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보여주기식 행태에 그치지 않는다. 현 행정부는 경악스러울만큼 공격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해왔다. 법원 판결을 준수하는데 늑장을 부리거나 사실상 이를 무시하는 것으로 비칠만큼 시간을 끈다.
트럼프 행정부는 언론, 대학, 비정부기관, 법률회사와 심지어 민간기업에 이르기까지 시민사회 전반에 전쟁을 선포했다. (대통령이 공갈협박 단체로 지목한 조지 소로스의 오픈 소사이어티 파운데이션울 비롯한) 민간기구들을 조사하려는 법무부의 계획은 권력자의 눈밖에 난 단체를 범죄조직으로 낙인찍는다는 점에서 대단히 불길한 징조다. 이는 미국 정치에 수입된 러시아와 헝가리의 논리로 비판자들의 견해를 반박하는게 아니라 해당자들을 조사한다.
법조인들도 압력을 받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정보접근을 위한 변호사들의 보안 허가와 연방건물 출입 제한, 그리고 ‘부적절한’ 클라이언트를 변호하는데 따르는 심각한 불이익 등의 경고성 암시를 통해 법률회사의 목을 조르는 한편 국가가 좋아하지 않는 로펌을 선택할 경우 적법절차에 따른 보호가 조건부로 적용된다는 메시지를 전 국민에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전달한다.
대학들 역시 유례없는 규모로 정면 공격과 조사를 받고 있다. 현대의 대학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이러한 상황이 지니는 위험성은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국가는 재정지원을 무기삼아 독립된 기관들에게 정치적 양보를 강요하고 있다.
자유사회의 조기경보시스템 역할을 해온 언론은 무분별한 겁주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정부의 협박에 직면해 있다. 언론매체들이 줄소송을 당했고, 국가의 규제권을 동원해 정권의 노선을 따르도록 언론사 사주들에게 압박을 가하는 시도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한 연방 판사는 정권의 사주를 받은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좌익단체인 미디어 매터스를 조사한 것은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해당 단체의 권리를 침해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중립적인 규제가 아닌 정치적 보복처럼 보인다고 판결했다.
현 행정부는 경제 분야에서도 국가 권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규칙 제정자라기보다는 거래중개자이자 규율 집행자로서의 역할을 더 강조하고 있다. 공개된 기준과 경쟁력에 근거한 재정지원을 통해 작동하는 산업정책과 최고경영자들(CEOs)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여 정부 지침을 따르도록 벌과 상을 주거나 ‘권고’하는 시스템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규제당국이 기업을 향해 정기적인 승인, 갱신 혹은 검토가 해당사가 특정 정책을 채택하거나 포기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암시할 때, 자본주의는 경쟁의 장이 아니라 후견인들이 쥐고흔드는 제도로 변질된다.
이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는 극단주의자들이 아니라 반대파를 대상으로 국가안보 도구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현 행정부의 태도다. 일부 ‘안티파’ 그룹을 외국 테러리스트 단체로 지명하려는 트럼프 정권의 시도를 생각해보라. 이 개념은 너무 모호하고 부실한 정의로 국가안보 전문가들조차 정부가 임의로 적용하는 포괄적 규정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외국 테러집단으로 지정된 조직에 의도적으로 “물질적 지원을 제공할 경우 최고 2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으며, ‘지원’ 또한 사소한 도움까지 포함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반대 의견을 불법이라고 선언하는게 아니라 아예 다른 것으로 재분류할 때 민주주의는 부패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서구’를 마치 상징, 구호와 정체성이 진열된 유산 박물관인 듯 이야기한다. 그러나 서구의 진정한 강점은 제도에 있다. 강자와 약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 자애로운 지도자가 아니라 권력이 제한된 지도자에 의해 보호되는 자유, 그리고 국가에 맞서더라도 이같은 반대가 범죄행위로 취급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만큼 건강한 시민사회가 서구의 강점이다.
서구는 혈통 사회가 아니다. 서구는 권력이 제한되고, 권리가 보호되며, 강압에는 책임을 묻는다는 합의에 기반을 둔 사회다. 서구가 느끼는 최대 위협이란 너무 관용적이거나 개인의 권리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팽창해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다른 모든 나라처럼 변질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문명 말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문명 말살은 유럽이 아니라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편안해하고, 미국 국민은 그런 정부와 함께 생활하는데 익숙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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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