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는 이야기] 가스라이팅(Gaslighting)

2025-03-21 (금) 07:48:07 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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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이런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친한 친구 사이에 큰 일이 아닌데도 작은 균열이 일어날 때가 있다. 그럴 때 한쪽이 다른 한쪽을 향해 냉정하게 말한다. “우리 그만 헤어져!” 그때 그 선언을 들은 쪽도 기다렸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대부분은 이렇게 작별하고 만다.

그러나 무심한 듯 쿨하게 돌아섰지만 사실 속마음은 엄청난 파도가 일렁일 수 있다. 눈물을 훔치며 “무슨 말이냐!” 붙잡고 싶었지만 한 줌 자존심 때문에 태연을 가장한다. 헤어지자고 말을 꺼낸 쪽도 주먹으로 벽을 치며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쪽은 집에 돌아와 엉뚱하게 세상을 원망하다가 한 순간 그 세상을 버릴 수도 있다.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많다. 어느 경우엔 쉽게 떠난 사람처럼 보여도 그 내면은 형언할 수 없는 실타래가 들어앉았다가 한 순간 사정없이 끊어냈는지 모른다.


요즘 알게 모르게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청춘들을 자주 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 제목도 있지만 아직은 새파란 인생인데 사는 게 힘들다고 삶이 아프다고 너무나 쉽게 자기(自己)를 청산하는 일이 빈번해 보고 듣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당사자가 아니어서 그런 결단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결단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구름과 폭풍과 눈보라가 그들의 마음을 몰아쳤으리라. 그러나 떠난 그들은 자기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갖고 있었던 사실을 자신만 모르고 있다가 마침내 그것을 놓아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가토 다이조가 쓴 짧은 글인데 의미가 작지 않아 소개한다. - 다이아몬드가 가공 대상이 되는 이유는/다이아몬드이기 때문이다/단순한 돌멩이라면/아무도 가공하려 하지 않는다.

젊은 생명들은 자기에게 닥치는 시련과 아픔이 가공(加工)의 과정임을 알아야한다. 그것을 알고 견뎌내는 힘이 있어야 한다. 훌쩍 떠나면 다 해결되리라는 착각이 자신을 벼랑으로 몰아갔겠지만 그 결심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영원한 길로 들어선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왜 나는 아픈가, 왜 내 인생은 이리도 고단한가, 천착해야 한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5분만이라도 둘러봐야한다. 나만 당하는 과정이 아닐 수도 있잖은가. 나라고 하는 원석(原石)이 다이아몬드이기 때문에 고난과 역경이라는 툴을 통해 가공된다는 진리를 새겨야한다. 물론 그런 인간이라면 삶을 가벼이 보지 않을 수도 있으니 헛된 충고이기가 십상이지만.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내 의도대로 타인을 지배하려는 기묘한 정신세계를 뜻하는데 이런 인간관계가 의외로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런 세뇌(洗腦)가 내 속에서도 이뤄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나 자신에게 가스라이팅 한다는 사실이다. “넌 안 돼! 넌 어차피 실패할 거야. 너 같은 인물은 꿈도 꾸지 마! 주변을 봐! 너보다 괜찮은 인간들이 즐비하잖아. 넌 사사건건 되는 게 없잖아. 그래서 죽고 싶지? 그래! 지금 죽으면 돼!” 마침내 악마의 속삭임이 내 앞에서 나를 무릎 꿇게 한다.


그렇다면 이런 가스라이팅은 어떤가. “그렇게 주눅 들거 없어. 너만치 골문을 향해 뛰어 온 놈도 흔치 않아. 실력? 다 거기서 거기야. 이제 기회만 붙잡으면 돼! 너 정도면 꿇릴 거 없어.

너는 이미 육면체로 빛나는 다이아몬드야! 일단 라면이라도 먹고 정신 차려.”
그런데 이 시대는 더욱 한심한 부류가 존재한다. 흔한 말로 “밥맛”들이 설치는 데 문제가 있다. 그들은 삶과 죽음을 한낱 돈벌이의 수단과 도구로 삼는다. 가녀린 영혼을 충동시켜 사지로 밀어 넣기도 하고, 사건과 사연에 매달려 슬픔을 더 슬프게 하는 장사꾼들이다.

안 떠나도 될 사람을 구덩이로 몰고 그 공로로 돈만 챙기는 인간들이 “알 권리”를 코끝에 걸고 또 다른 가스라이팅을 자행하지 않는가. 잔인한 일이다.

<신석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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