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요 에세이] 신념의 시대는 가고

2025-03-19 (수) 08:15:15 한영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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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가 현재의 정치환경에 맞추어 팩트 체크나 검열을 내려 놓았다는 얘기는 이미 쓴 적이 있다. 이제는 게이나 성전환자를 정신병자(mentally ill)로 쓰는 게 용인되고, 여성을 집안 것(household objects)으로 표현해도 하자가 없다는 보도가 나온다.

여기에 덧붙여 메타는 그간 고수하던 DEI 정책(다양성, 형평성, 포용성)도 폐기했다. 참 빠르고도 손쉽게 버린다. 그러고 보면 이 정책들을 내세웠던 건 어떤 철학이나 신념에 의해서가 아니었던 것. 그저 눈치가 빤해서였음이 증명된 셈이다.

저커버그는 트럼프의 플로리다 마라라고를 뻔질나게 드나들더니 자기 회사의 검열 시스템을 민주당의 캘리포니아에서 공화당의 텍사스로 옮길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1월에는 온라인으로 임신중절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을 의사의 무대면 진료와 약으로 연결해주던 Aid Access라는 단체의 인스타그램이 아무 것도 없는 공간으로 얼어붙은 일도 있다.


이를 보면 메타는 저커버그의 말처럼 검열을 사라지게 하고 대신 언론의 자유로 돌아간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특정 영역만을 검열하고 있는 것이다. 참 아부도 지극하다. 그래서 Tech Policy Press라는 비영리 매체는 메타가 전제주의적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유럽은 전혀 다른 행보의 길을 걷는다. 그들은 매우 엄격하고 값비싼 인터넷 규제를 새로 만들었다. 디지털 세계는 사실상 법적 근거 없이 회사가 알아서 정하는 규제가 다였다. 이 무소불위의 영역을 법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EU는 2023년 8월 25일부터 디지털 서비스 법 시행에 들어갔다.

미국은 오랜 기간 동안 세계의 민주주의를 선도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민주주의보다는 자본주의의 거점이 되어가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많은 6/25 참전용사들은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신념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신념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떤 신념이든 신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든 모멘텀의 동기는 밥그릇 싸움이 됐다. MAGA도 결국 제 밥그릇이 제일 커야 한다는 다짐으로 보인다.

시애틀에 있는 아마존 본사의 가족의 날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거대한 아레나에서 열린 행사에 온 가족을 거느리고 나타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도인, 중국인이었다. 중국 청년들은 채용되어 오면서 자기네 정부로부터 언제까지 들어올 것이며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서류에 사인을 한다고 한다.

고급차나 고급 주택을 구입할 수 없다는 것도 조건 중 하나다. 하지만 그들은 재빨리 자본주의에 적응하고 집과 차를 구입했다. 그러고 보면 이런 욕망은 인간의 본질적인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것이라 해도 모두 정당한 건 아니다.

개인이든 회사든 나라든 욕망에 한계를 두는 것. 그것이 법이다. 누가 미국에도 그런 법을 만들어 인터넷 세계를 통제할까? 요즘처럼 나아간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부메랑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게 뻔하다. 많은 아이들이 망가지고, 적나라한 욕망이 펄펄 끓는 사회가 될 것이다.

신념의 시대가 갔다 해도 법의 시대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법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영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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