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일룡 칼럼 늦깎이 대학생

2025-03-07 (금) 06:09:59
크게 작게
최근 변호사 업무에서 은퇴한 후, 지난 몇 주 동안 내가 사는 지역의 조지메이슨 대학에서 청강생으로 한 강의를 듣고 있다. 수업 전 미리 읽어야 할 과제를 챙기고, 교수에게 채점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시험도 치렀다.

원래는 미국사 개론을 듣고 싶었다. 미국사 공부를 마지막으로 한 것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니 벌써 50년 전이다. 그런데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미국 역사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관련 책을 읽기도 했지만, 머리에 오래 남을 정도로 효과적이진 않았다. 물론 유튜브 등을 통해 강의를 들을 수도 있었지만, 꾸준히 공부하려면 정기적으로 학교에서 강의를 듣는 것이 더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미국사 수업에는 청강생 자리가 없어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대신, 기초 통계학을 수강하기로 했다. 교육위원으로 일하면서 통계 자료를 접할 때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는 통계학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듣는 수업은 젊은 교수가 가르치는데, 학생은 나를 포함해 총 8명이다. 교수는 여자인 반면 학생은 모두 남자라는 점이 특이했다. 첫날 수업에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교수로부터 시작해 학생들 모두 돌아가면서 간단히 소개했다. 교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학생들은 내게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냈었다. 이에 은퇴한 변호사이자 두 살 된 손녀를 둔 할아버지, 그리고 여섯 번 당선된 현직 교육위원이라는 배경과 함께 수강 이유를 설명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듯했다. 나는 테크놀로지 활용에는 서툴지만, 강의 내용을 이해하는 수준이나 교수의 질문에 대한 답변, 그리고 궁금한 부분에 대한 적극적인 질문에서는 젊은 학생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모습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자극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이 강의를 듣기까지 적지 않은 난관이 있었다. 버지니아주 법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시니어 주민은 주립대학에서 학비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학 측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려면 영어 능력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나는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로스쿨까지 졸업했고 변호사로서 40년간 활동했는데, 왜 그런 시험이 필요한지 항의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대학교 성적표를 제출하라고 했다.


나는 학위를 취득하려는 것도 아니고, 법적으로 보장된 혜택을 이용하려는 것뿐인데, 40년 이상 전 졸업한 대학에서 성적표를 받아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 불필요한 절차라고 주장했다. 대신 졸업장 사본을 제출하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지만, 대학 측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결국, 수강 신청 마감일이 다가와 어쩔 수 없이 성적표를 구해 제출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불필요하게 시간과 비용이 들었던 것은 예방접종 기록 제출 요구였다. 대부분의 예방접종은 60년 이상 전에 한국에서 받았는데, 지금 와서 그 기록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대학 측에서는 다시 접종을 받으라고 했다. 다행히 홍역, 볼거리, 풍진은 혈액검사로 면제받을 수 있었지만, 결핵 검사와 소아마비 예방접종은 다시 받아야 한다는 점이 납득되지 않았다. “과거에 미국에서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녔다면 이미 필요한 예방접종을 마쳤을 텐데, 지금 와서 또 맞아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지만, 대학 측의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주의회가 있는 리치먼드에서 열린 로비 행사에 참석했다가 페어팩스 카운티를 지역구로 둔 주 상원의원 한명을 우연히 만났다. 대화를 나누던 중 이 문제를 이야기했는데, 마침 그 의원이 이 대학 출신이었다. 그는 예방접종 요구가 법적 요건이 아니라 학교 재량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후 그의 도움으로 예방접종 요구는 면제받을 수 있었고, 그는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안 발의를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요즘 일주일에 두 번씩 캠퍼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척 즐겁다.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문 일룡 변호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