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요 에세이] 동이(東夷), 문명의 주역이었던 우리 조상

2025-03-05 (수) 12:00:00 김미선 서북미문인협회 회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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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실록》에 따르면, 이성계가 새 나라의 국호를 정할 때 명나라 주원장은 “동이를 이르는 말 중에서 조선이라 칭함이 가장 아름답고 기원이 오래되었으니 이를 조상으로 받들라”고 했다. 이는 고려와 조선을 같은 동이(東夷)의 연속선상에서 인식한 것이다. 조선이라는 국호가 옛 조선(아사달의 한자표기: 해가 떠오르는 밝은 땅)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우리의 국통을 되새기게도 한다. 주원장은 철저하게 명의 외교질서라는 입장에서 자문(咨文)을 전달했겠지만, 이는 우리가 중원과 동방을 잇는 문명의 주체였으며, 독자적인 문화와 전통을 형성해왔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동이란 누구인가? 후한의 학자 허신은 《설문해자》에서 “이(夷)는 동방 사람들을 뜻하며, ‘대(大)’와 ‘궁(弓)’으로 이루어져 활을 잘 다루는 크고 너그러운 민족”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동이족이 순리를 따르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문명적 주체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최초의 한자자전에서 가장 흥미로운 글자는 사실 철(鐵)자이다. 철(鐵)의 옛 글자인 ‘철(?)’은 “이(夷)의 쇠(金)”로 풀이된다. 이는 동방 사람들이 철을 다룰 줄 알았음을 초기 한자가 보여준다. 철기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히타이트 등에서 발전했지만, 동이족이 동아시아 철기 문명을 선도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고대 동이족들은 철이 많이 나던 산동반도와 그 남부 강소성 일대에 거주했다. 《사기》권1본기에 따르면, 구리국(구리, 고리: 밝은 해, 배달:밝다)의 왕을 치우(蚩尤)라 했으며, 그는 철기를 처음 주조했다고 전해진다. 한나라『예기』의《예기정씨주》나《사기》에 의하면 구리국 백성을 묘족(苗族)이라 불렀다. 이들은 장강(양자강)·회수·형주 등 비옥한 지역에 퍼져 살았다는데 위의 지역과 겹친다. 현재도 묘족은 치우를 숭배하며 같은 지역에 넓게 분포해 있고, 충칭시에는 치우의 구리성이 남아 있다.

동이족은 다양한 부족이 연합한 고대 국가를 형성하며 중원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것이다. 《삼국사기》제28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의 선조는 묘족의 옛 성인의 후예라 한다.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기때 병사 백만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오(吳)·월(越) 지역을 점령했고, 북쪽으로 유(幽)·연(燕)·제(齊)·노(魯) 지역을 정복했다. 《사기》에는 고구려의 시조 고양전욱(高陽?頊)의 아들 곤(鯤)이 산둥반도의 우산(羽山)에서 다스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고대 동이족의 존재가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에서 문명을 형성하고 활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고조선의 옛 지명뿐아니라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도 중원 땅에서 탐구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의 역사는 ‘중원 문명’이라는 거대한 담론 속에서 변방으로 밀려나거나 축소되곤 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떤 문명의 계승자인가?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의 역사, 우리의 문명적 자산을 재조명하는 일은 단순한 과거에 대한 회고가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 지에 대한 중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조상들이 남긴 지혜와 유산을 올바로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바로 세울 수 있을것이며, 역사를 바로 아는 민족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갈 힘을 가질 것이다.

<김미선 서북미문인협회 회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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