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지 F. 윌 칼럼] 금메달 감인 J.D. 밴스의 무례함과 경솔함

2026-02-16 (월) 12:00:00 조지 F·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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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 밴스는 영어가 지닌 풍성한 세밀함을 거부한다. 대신 그는 거친 단어들을 즐겨 사용한다. 남성적 기백을 과시하고 세련미를 거부하는 대중주의적 정서를 표현하는데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밴스는 최근 소셜미디어에 불쾌한 글을 올린 사람을 “멍청이”(dipshit)로 몰아세웠다. 또한 얼마전 한 인터뷰에서는 그의 아내를 비판하는 사람은 누구든 “엿 먹을 것”(eat shit)이라는 역대급 폭언을 터뜨렸다.

아마도 밴스는 많은 미국인들이 입이 거친 고위 인사들을 좋아한다는 나름의 합리적 판단을 내렸는지 모른다. 음담패설로 가득찬 ‘액세스 할리웃’ 녹음파일은 2016년 대선 선거일 32일 전에 공개됐고, 여성의 성기를 움켜쥐는 음란행위를 화제삼아 희희덕거리던 육성 녹취록의 주인공은 대통령에 당선됐다.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주권국가들을 ‘쓰레기같은 나라(shithole countries)’로 매도하는 대통령 아래서 5년을 보낸 미국인들이 거친 언어에 익숙해졌을 것이라는 밴스의 추측은 최소한 합리적이다.

그는 막가파식 발언을 경멸하는 사람들을 나약하다고 생각한다. 밴스는 자신이 욕설을 내뱉을 때 움찔대는 미국인들은 고급스런 취향에 물들지 않고 생생한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소박함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게다가 현재 에이브러햄 링컨 의자의 임자는 대중 연설에서 ‘shit’이라는 비속어를 수 십번이나 구사했던 인물이다.


링컨의 수많은 유머러스한 이야기들 중에는 외설적인 것들도 더러 섞여 있지만 그가 남긴 글과 말의 기록을 샅샅이 뒤져봐도 ‘시간, 장소와 예절’의 도덕적 기준을 위반한 사례는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숱하게 논의됐듯 기준이란 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고,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기준이라 부른다.

지난해 활기넘치는 공화당원들의 단체 채팅방에서 오간 과격한 대화 내용이 외부로 유출됐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20대 중반이었고 두 명은 30대였다. (“샤워기를 고치면 안될까? 가스실은 히틀러의 미적 감각에 맞지 않아”, “반대표를 던진 자들은 모두 가스실로 보내야 해”, “싸구려 수박같은 인간들”, “유대인들이 정직해질 것으로 기대할 수 없어”, “나는 히틀러를 사랑해”). 이에 대해 마흔 한 살의 밴스는 ‘아이들’은 별별짓을 다하며 큰다는 인자한 ‘아재 반응’을 보였다: “아이들은 어리석은 짓을 하기 마련이다. 어린 아이들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아이들은 파격적이고, 불쾌한 농담을 잘 한다. 그게 아이들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독립선언문을 작성할 당시 33세였던 토마스 제퍼슨도 철부지 아이였던 셈이다.

밴스는 조지 거슈윈과 아이라 거슈윈 언어학교의 학생처럼 보인다: 당신은 이더(eether)라고 발음하고 나는 아이더(eyether)라고 한다./당신은 니더(neether)라고 하고 나는 나이더(nyther)라고 말한다./이더, 아이더, 니더, 나이더./이제 이 모든 것을 끝내버리자. 거슈윈 형제는 연인들이 “당신은 이것을 좋아하고/나는 저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다투는 것을 부당하게 여겼다.

밴스는 자신이 명백히 사소하게 여기는 것들이 우정과 정치적 연합을 방해하는 것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보인다.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밴스는 “내가 터커 칼슨과 의견이 다르다는 것인가?” 되물은 후 “몰론이다. 나는 대부분의 친구들과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칼슨은 반유대주의자이자 히틀러와 스탈린 숭배자인 닉 푸엔테스와 길고 화기애애한 팟캐스트 인터뷰를 진행했다. (트럼프는 푸엔테스를 마라라고 저녁식사에 초대하기도 했다.) 지난 2024년, 칼슨은 “오늘날 미국에서 활동하는 가장 정직하고 인기있는 역사가”라는 찬사를 퍼부어가며 한 저자와 우호적인 대담을 나누었다. 이 저자는 2차세계대전의 악당은 윈스턴 처칠이고 아돌프 히틀러는 애꿎게 비난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밴스는 “보수주의 운동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칼슨과 자신의 “의견차이”는 그와 자신의 친구들 사이의 의견차이와 비슷하다고 간결하게 정리한다. 바닐라, 바넬라, 오이스터스, 얼스터스, 대체 이런 차이가 무슨 대수냐는 태도다.

2024년 선거전 동안,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 거주하는 아이티인들이 애완동물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퍼져나가자, 여기에 손을 보탠 반스는 소문을 뒷받침하는 사실이 전혀 없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미국민이 겪고 있는 고통에 언론이 진정어린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이야기를 꾸며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의 게으름 때문에 그가 거짓말을 해야 할 의무를 짊어졌다는 얘기다.

불혹의 고지를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밴스는 사춘기의 반항적 행동을 이어가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어길만한 규범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시대에 일탈적인 행동을 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시도한다. 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최대의 전쟁에 대해서도 그는 “우크라이나에 어떤 일이 일어나건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상당히 파격적인 발언이다.

오늘날 유일한 정치는 보여주기식 정치다. 그러나 그것이 꼭 거치름과 경솔함의 경쟁이어야만 할까? 밴스를 대신해 말하자면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든다. 그러나 그의 진정성에 박수를 보내기 전에 그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에 주목해야 한다.

<조지 F·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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