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화수월(鏡花水月)’
거울에 비친 꽃과 물에 비친 달이라는 뜻의 4자성어로 ‘호수에 비친 달 그림자’처럼 눈으로 볼 수 있으나 잡을 수는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명나라 시절 당대의 시인이었던 이몽양의 저서에서 한시의 묘미를 설명하기 위해 처음 언급되면서 ‘느낄 수는 있으나 표현하기가 모호한’ 느낌을 표현하는 데 쓰였다.
난데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열린 5차 변론기일에서 느닷없이 ‘호수에 비친 달 그림자’를 언급했다. 이는 당시 증인이었던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계엄 당일 윤 대통령과 두 차례 통화했다. 당시 대통령은 ‘싹 다 잡아들여’라고 말했다”고 하자 윤 대통령이 반박 차원에서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의 절친이자 대통령측 변호인단 소속 석동현 변호사는 “대통령은 이번 내란 수사나 탄핵 재판에 대해 ‘호수 속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호수에 비친 달 그림자를 쫓아 달을 건지겠다는 식의 아무런 실체가 없는 수사이고 희한한 재판’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아주 친절한(?) 해설까지 내놨다. 그는 이어 “지난해 12월3일 계엄 당일 국회 안팎이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워 군 지휘관들에게 ‘의원들을 체포하라, 끌어내라’는 지시나 대화 자체가 아예 오갈 수 없었던 상태였다”고 주장하며 “윤 대통령이 실체가 없는 일에 매달리는 것은 무익한 일이라는 뜻에서 간단하게 말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시의 수사법이 비상계엄의 위법성과 불법성을 부인하는 정치적 수사로 ‘깜짝’ 변신한 셈이다. 윤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TV 생중계를 통해 무장 군인들이 국회에 난입하는 충격적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 본 일반 시민들과, 계엄의 불법성을 따지기 위해 탄핵심판을 청구한 국회를 졸지에 ‘호수에 비친 달 그림자’를 좇는 망상가로 만들어 버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25일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도 비상계엄 선포가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라며 불법 내란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심지어 계엄령의 목적이 대국민 호소 차원의 ‘계몽령’이었다고 강변했다. 무려 25번에 걸쳐 ‘간첩’을 언급하며 북한을 비롯한 외부 주권 침탈 세력과 한국 사회 내부 반국가세력의 연계로 한국이 망국적 위기와 국가비상사태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다.
‘부정선거론’에 대한 주장도 재차 밝혔다. 윤 대통령은 2023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북한에게 해킹당하고도 점검에 응하지 않았고, 심각한 보안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에 전산시스템 스크린 차원에서 소규모 병력을 보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계엄법은 계엄령의 선포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때 선포한다고 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상황이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냐고 강변했지만, 한때 심복이었던 핵심 증인들 조차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게다가 야당이 압승한 국회의원 선거를 부정선거로 의심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0.73% 간발의 차이로 승리한 대통령 선거와 여당이 압도한 지방 선거 결과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쯤되면 ‘호수에 비친 달 그림자’를 좇았던 망상가는 다름 아닌 대통령 자신일 지도 모를 일이다.
최종 변론을 마지막으로 3개월 넘는 ‘대장정’을 마친 대통령 탄핵심판은 오는 3월 중순께 인용과 기각을 가리는 선고를 앞두고 있다.
헌재 재판부가 시민들과 국회가 호수에 비친 달 그림자를 좇아 정당한 실체도 없는 계엄의 불법성을 주장했다고 판단한다면 탄핵소추를 기각할 것이다. 반면 윤 대통령이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을 했음에도 간첩과 부정선거의 망상에 사로잡혀 달 그림자를 좇았다고 인정할 경우 대통령직에서 파면하는 결정을 선고한다.
‘태백착월(太白捉月)’
술을 사랑했던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에 취해 채석강에서 물 속의 달을 잡으려다 죽은 일을 이르는 말이다. 부디 헌법재판소가 호수에 비친 달을 좇아 헛되게 물 속의 달을 잡으려는 망상이 더 이상 한국사회를 지배하지 않도록 공정하고도 엄정한 결정을 내려줄 것을 기대한다.
사족.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 계엄령을 통해 간첩과 부정선거의 실태를 알게 되었다면서 계엄령과 계몽을 합한 ‘계몽령’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제발 꿈에서 깨어나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깨몽령’이라도 선포하고 싶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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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