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고

2025-02-24 (월) 12:00:00 전지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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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쳤다. 노벨 문학상, 한강 이라는 이름때문에.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읽으며 드는 느낌은 “어둡다”라는 것이다. 그래도 <소년이 온다>는 <채식주의자>보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소설화 한 것이라 조금 읽기 수월하다.

책을 덮으며, 광주사태는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라는 질문을 다시 하게 한다. 1980년, 그해는 공교롭게도 우리가 결혼을 한 해. 신혼이였고 당시 남편은 공군 대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니 우리는, 대한민국의 어느 한 지방에서 일어난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그해 늦은 봄 날, 뉴욕의 이모가 국제 전화를 걸어 와 “별일이 없느냐”고 물어서, 괜찮다고 답했던 것이 전부. 계엄령은 전국에 걸쳐 발령되었지만 그 사실이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히 몰랐다. 신군부가 자신들의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제물을 찾았고, 그들의 방법에 희생 제물이 되었던 곳이 광주, 인가? 아니면 전남대 학생들의 거센 반발이 상황을 만들어 가게 된 도화선이 되었던 걸까? 그 어느 쪽이 되었더라도 박정희가 총에 맞아 죽고, 그의 양아들이였다던 전두환이 혼란기를 틈다 벌렸던 세력의 찬탈은 너무 많은 희생을 치루었다.

무고한 학생들과 광주시민들과 나라를, 도시를 지키겠다는 결의의 사람들을 무차별로 죽였다. 그 안에 동호가 있고, 은숙과 정미와 정수, 김진수 들이 있다.


공항에서 다시 책을 펼쳤고, 비행 내내 책을 읽었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도 나는 이어서 책을 읽었다. 끝까지 단숨에 다시 읽은 책이다. 가슴은 답답하고, 머리 속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세상을 이렇게 맨손으로 맞서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오늘을 사는 나는 너무 가볍게 살고 있는것은 아닐까? 자성해본다.

동호어미의 마음이 되어 책을 내려 놓는다. 피눈물이 고이는 가슴. 어린 동호는 왜 도청에 남았을까? 저녁 전에 돌아 간다는 말을 어미는 왜 믿었을까? 그것은 희생이었을까? 정의 였을까? 내가 그 시간 그곳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은숙누나가 되어 호되게 동호를 나무라고 돌려 보냈을까? 아니면 손을 잡고 버티었을까?

난 한번도 광주를 가보지 못했다. 전남대와 금남로와 5.18기념관들을 언젠가는 가보게 되겠지만 그 앞에 서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참,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일 것 같다. 얼마나 지나야 이 아픔이 치료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한강의 괴적을 따라 가보는 광주. 10살, 끔직한 장면들의 사진첩을 보며 각인 되었던 기억들. 자료를 모으고, 명치에 칼이 찔리는 꿈을 꾼 후에 썼던 책. 문장은 어둡고 습하지만 이런 사실들을 소설화하며 희학적인 언어들을 사용 할 수 는 없지 않는가. 한강의 시선이 되어, 동호의 어미가 되어, 과탐학원강사의 동생이 되어 세상을 바라본다.

짧은 여행을 온 곳. 멀리 창 밖으로 빌딩 숲이 보이고 이어지는 낮은 산세들 위로 붉은 하늘이 이어진다. 세상은 답이 없는 채 광주는 그곳에, 나는 이곳에서 이렇게 가볍게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을…

“이왕쓰는 거, 잘 써주시오” 낯선 곳에서 동호의 형이 되어 책 속의 한강을 만난다.

<전지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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